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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닝 Feb 27. 2022

붉은 달 밑에서 당신을 그린다

나의 롤모델

여러 노래를 즐겨 듣는 편은 아니지만

한 노래에 꽂히면 적어도 2주는 그 노래만 지겹도록 듣는다.

가끔 내 플레이 리스트에 들어가 보면 내가 듣던 노래들로

당시 상황이나 기분을 유추할 수 있다.

UCLA에 여름학기를 들으러 갔을 땐 성시경 노래를 많이 들었다.

이건 내가 처음으로 일본에 혼자 여행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내게는 성시경 노래의 감성이 한국을 떠올리기 좋았나 보다.

짝사랑에 속앓이를 했을 시점에 플레이 리스트를 보면 죄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노래뿐이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도 나는데 그때는 그녀가 날 봐주지 않는다는 게 참 슬펐나 보다.


전역하면 철든다 했던가.

한 3개월까지는 나도 바쁘게 살았다.

전역 이후 바로 VIPS에 들어가 아르바이트를 했고

동네 헬스장에 3개월 치를 등록하고 매일같이 나가기도 했다.

갑자기 '도전'이라는 키워드가 끌려 무작정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로 갈 준비도 했다.

물론, 장거리를 한 번도 타보지 않았던 내게 633km를 내달리는 건 큰 무리가 따랐고

이튿날 뜻하지 않게 10월 한파가 들이닥치며 양주에서 발길을 돌렸다.

이 시기보다 한 달 앞서 빕스 알바도 그만뒀다.

학교도 가지 않고 운동을 하지도 않고 돈을 벌지도 않았다.


작금의 2,30대들은 휴식을 두려워한다고 한다.

유튜브, 인스타 등 일반인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SNS 매체가 상당히 발달해 있고

소수의 사람이라도 모두의 워너비가 되는 사람들이 크게 부각되어 나만 뒤처진다는 생각을 많이 한단다.

나도 똑같았다.

매일같이 인스타에 사진을 올리고 운동을 하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하물며 없던 일까지 만들어 국토종주 도전까지 했는데 더 이상 할 게 없었다.

미리 찍어둔 사진들은 이미 인스타에 다 올렸고 쌓아뒀던 소재거리도 블로그에 다 올린 뒤였다.

당시 나는 독립을 할 생각이어서 헬스장을 더 연장하지 않았다.


이때 나온 노래가 strawberry moon이다.

믿고 듣는 아이유라고, 내가 닮고 싶은 인생을 살며 대중에게 사랑받는

그녀의 노래를 듣지 않을 재간은 없었다.

IU의 이번 앨범은 희망과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삶이 어떡해 더 완벽해.'

그녀 입장에서는 지금이 꿈만 같을 것 같다.

15년 정도 전만 해도 가족이 뿔뿔이 흩어질 만큼 어려웠는데

지금은 노래든 연기든 대중에게 사랑받고 말 그대로 완벽한 인생을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근데 이번 노래는 그녀 삶의 행복감을 노래하기도 했지만

모든 젊은이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해 보라는 메시지를 담기도 했다.

'달이 익어가니 서둘러 젊은 피야'

노래 가사와 함께 멜로디도 당장 뛰쳐나가야 할 것만 같은 벅찬 감정을 느끼게 해 줬다.

그래서 그런지 strawberrymoon의 유튜브 댓글을 보면 울컥한다는 사람이 많다.


나 역시도 그중 한 명이었다.

벅차고 알 수 없는 울컥함을 느끼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나의 작은 꿈이었다.

처음엔 부업으로 작사가라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 보니 3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는

언어의 마술사, 작사가라는 직업이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군대에 있을 때는 유명 작사가인 김이나 저술의 '김이나의 작사법'을 읽기도 했다.


Strawberrymoon을 다 듣고 나서 작곡도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데에는 가사도 중요하지만 운율을 만드는 작곡의 힘도 중요하다고 느꼈다.

다음 날 바로 부평에 있는 한 음악 학원으로 달려가 작곡반 등록을 했다.

이처럼 나는 뭔가에 꽂히면 당장 해야지 직성이 풀린다.


아이유가 이번 앨범을 냈을 때 노래를 들은 누군가가 감명을 받고 작곡가의 길을 걸을 거란

생각을 하며 노래를 부르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도 나는 Strawberrymoon을 듣고 다시 한번 음악계에

관심을 가지고 첫걸음을 시작했다.


정말로 내가 작곡가나 작사가가 되든 아니면 전혀 다른 일을 하든지에 관한 건 상관없다.

중요한 건 아이유는 내 삶의 작은 변화를 일으켰다.

언젠가 아이유를 만나 내 곡을 전해줄 기회가 생긴다면 문학적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붉은 달 밑에서 당신을 그리며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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