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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미 있는 아메리카노

‘나’를 알아가는 시간

by 까까멜리아

요즘 들어 매일 아침 일어나면 따뜻한 물 한 잔 마시며 가족들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나는 제철과일과 고단백 두유에 에스프레소를 섞은 두유라떼로 아침식사를 갈음한다.


필요에 의해 산 가전, 이를테면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식세기, 정수기 등등 외에 가전이지만 취미 영역에 속하는 게 있다면 커피머신이 아닐까 싶다.


커피를 마신 지는 20년이 다 되어간다. 대학 다닐 때, 학교 앞 먹자골목 초입에 아메리카노 take-out전문점이 생겼는데, 한 잔에 1,000원이었다. 천 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내 커피의 시작이었다. 지금이야 천 원짜리 커피는 찾기 힘들지만, 당시 학교식당 아침세트(참치마요주먹밥+계란프라이)가 1,000원이었다. 천 원짜리 커피지만 매일 사 먹을 가격은 아니었기에 가끔보다는 자주, 그렇다고 매일은 아닌 빈도로 사 먹었다. 특히 시험기간이나 밤샘작업을 앞두고 있을 때면 잊지 않고 사 먹었는데, 달지 않고 시원하고 쌉싸름한 커피가 좋았다.


대학졸업 후 돈을 벌기 시작하자 동기들과 점심 식 후 스타벅스에 들르는 게 루틴이었다. 사원 나부랭이 시절, 팀에서 막내로 수발들며 점심을 먹은 뒤 동기들과 갖는 고작 15분 남짓의 짧은 커피타임은 숨구멍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꽤 오랫동안 커피는 밖에서 사 먹는 것이었는데, 결혼할 즈음 가정용 캡슐커피머신이 보급됐고, 친한 친구가 결혼 선물로 커피머신을 사줬다. 캡슐만 넣으면 사 먹는 커피와 같은 커피를 먹을 수 있게 되자, 이제 캡슐커피도 생필품 중 하나로 자리 잡아버렸다. 그렇게 매일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내 입에 좀 더 맛있는 커피를 자꾸 찾게 됐고, 나는 내가 과일, 꽃 향의 산미 있는 원두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침식사 대용이 아닌 평소에는 아메리카노만 마신다. 커피는 술, 담배 전혀 하지 않고, 화장품, 옷, 가방 등 쇼핑도 즐기지 않는 내게 사치품이자 기호식품이자 취미생활이다. 굳이 끊을 맘도 아직까지는 없다. 가끔, 가정용 원두커피머신이 사고 싶다는 충동이 생기지만 프로 귀찮러인 나는 원두머신을 잘 세척하며 쓸 자신이 없으므로 캡슐커피에 만족하려 노력 중이다. 역시 대학 시절 카페 알바 마감조로 머신 청소하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서, 집에서 그 일을 하고 싶지가 않다. 그런 면에서도 캡슐커피머신은 정말 편리하다.


커피를 제외하면, 어떤 한 가지, 혹은 한 분야를 20여 년 가까이 좋아하는 일이 지금까지 내겐 없었다. 아이돌 가수를 좋아해도 팬클럽에 가입한 적은 없었고 특정 브랜드를 꾸준히 선호한다거나 어떤 스타일, 유행을 따라간 적도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떤 취향을 가질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이키나 아디다스 운동화도,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한 20대 중반에 처음 신어봤고, 보세가 아닌 옷을 사 입은 지도 불과 10여 년 정도밖에 안 됐다. 마흔이 된 지금에서야 나는 하나, 둘 씩 내 취향을 알아가는 중이다. 커피, 디저트, 로션, 문구류, 양말, 이불, 음악, 영화 등, 내 경제적 수준에서 선택 가능한 범위로 하나 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생겨나고 있다.


취향이라는 게 생기고 선호가 생기면 좋은 점은, 선택할 때 고민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 제품을 살 수 있다면 사고, 없다면 사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여전히 내 취향은 어느 쪽인지 찾는 영역도 있다. 좋아하는 작가, 혹은 인생책이란 것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이 역시 더 다양하고 많은 책을 읽어보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나씩 취향을 찾을 때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하나씩 알아가는 것 같아 재미있다.

나이가 더 들면 그때는 좀 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많아져 있을 것이고, 그만큼 지금보다 나에 대해서도 더 잘 아는 사람이 되어 있겠지라는 기대도 아주 살짝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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