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보다 빈도
정말 귀찮은 일은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게 된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추럴 본 베짱이 스타일인 나는, 집을 쓸고 닦는 일을 자꾸 미루게 된다. (단, 나는 참된 베짱이라 입이 즐거운 음식 해 먹는 일은 절대 미루지 않는다.) 오늘은 그 미룸의 정점에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팔을 걷어붙인 날이었다.
미루고 미룬 그 일은 바로 1층 화장실 청소!
우리 집은 3개 층의 작은 타운하우스인데, 층마다 화장실이 있다. 처음에는 세 곳 모두를 사용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두 곳만 사용하게 됐다.
3층은 아이 방과 남편 서재방이 있어서 둘이 쓰니
남편이 청소를 하겠다고 했다.
(잘하는 건지… 일단 나는 흐린 눈…)
규모는 가장 작지만, 사실상 우리 집 메인 화장실은 1층 화장실이다. 비데도 1층에 있고, 온 가족 양치는 물론 간단한 손빨래, 아직 어린 둘째의 샤워 등 많은 일을 1층 화장실에서 해결한다.
그러니 그만큼 빨리 더러워지고 청소도 더 자주 해야만 한다. 일주일 정도까지는 대충 보이는 부분만 청소해도 되지만, 그 기간이 지나가면 일이 눈덩이처럼 커진다.
한동안 바빠서 화장실 청소를 소홀히 했더니…
더럽다.
흐린 눈으로도 못 봐주겠다 싶어, 어제 가족들에게 얘기했다.
“내일은 1층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할 거야.”
일단 말부터 뱉어야 못 미룬다. 그리고 그 내일이 오고야 말았다. 아침밥 해서 남편과 아이들을 먹이고, 두 아이 라이딩을 마친 뒤 오는 길에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한 잔 샀다. 차가운 커피를 쪽쪽 먹으며, 박카스를 살 걸 그랬나 생각할 만큼 내겐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정말 딱 싫어하는 일이다.) 후다닥 마시고 벌떡 일어나 헤드셋 끼고 청소를 시작했다.
화장실 안에 있는 모든 작은 물건을 닦아서 밖으로 꺼냈다. 둘째의 간이욕조와 발받침, 소변기도 모두 빡빡 문질러 닦고, 벽을 닦고, 창틀과 모기장을 세척하고, 바닥에 깔아 둔 미끄럼 방지 깔판도 모두 뒤집어 구석구석 낀 물때를 닦아 말렸다.
중간중간 실리콘에 앉은 곰팡이는 락스 묻힌 키친타올을 얹어두고 10분 지나 닦고, 세면대와 변기는 물론 거울장 안쪽까지 모두 청소 한 뒤, 실리콘 칫솔걸이를 끓는 물에 삶았다. 하수구 청소까지 마치고 마지막으로 스퀴지로 모든 물기를 제거한 뒤 창문과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 물기를 말렸다.
정말 작은 화장실인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괜히 머리가 띵 한 기분이 드는 게, 락스 향을 많이 맡았나 싶었다. 물기가 마르는 사이 잠시 누워 재충전을 하며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세상에, 이 쬐그만 화장실 하나 청소하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어.‘
잠시 후 영상전화가 걸려왔다.
고생했다고, 점심시켜 먹으라고,
남편은 다른 건 몰라도 처음 만난 이후 지금껏 꾸준히, 수고에 대한 칭찬과 감사의 표현을 잘하는 사람이다.
점심을 뭘 먹을까 생각하다가 펜트리에 하나 남은, 육개장 사발면을 먹기로 했다. 고생한 내게 주는 길티플레져다. 나름 큰 결심을 하고 펜트리를 열었는데, 없다. 육개장 사발면이 하나도 없었다.
‘따흑…‘
건강식 먹으라는 온 우주의 도움인가 보다 하고, 밥과 반찬들 꺼내 점심을 먹었다. 우적우적 씹으며 생각해 보니, 별 것 아닌 작은 화장실 청소가 나의 하루 중 절반을 점령해 버렸구나 싶었다. 결심하기까지 포함하면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청소가 필요 없게, 틈틈이 스퀴지 써 주고, 배관청소 해 주면 될 일인데…
머리로는 다 아는 얘기지만 실천이 안 된다. 내겐 날 잡아 대청소를 하는 것보다 매일 작은 청소가 더 어렵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매일, 꾸준히 무언가를 한다는 것, 일상에 루틴을 하나씩 늘리며 균형 잡힌 삶을 사는 일은, 그 루틴 한 생활로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이전에, 그 자체로 엄청난 도전과제인 것 같다.
나의 일상에도 루틴으로 자리 잡은 좋은 습관들이 물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잠깐 하는 스트레칭, 이불정리, 따뜻한 물 한잔, 아침 챙겨 먹기 등 비교적 쉽게 자리 잡은 루틴들이 있는가 하면, 화장실 사용 후 간단한 청소와 같은 루틴은 주부생활 13년 차인 아직까지도 잘 붙지 않는 것 같다. 노력은 해 보겠지만, 그럼에도 루틴으로 붙지 않는다면 화장실 청소는 어쩔 수 없이 대청소의 영역으로 넘겨야겠다.
유명한 말 중에 행복은 강도 보다 빈도라는 말이 있다. 행복뿐이 아니라 내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비 물질적인 것들은 그 규모나 강도보다 ‘얼마나 자주‘라는 빈도에 방점이 찍혀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살림하는 주부라는 포지션에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잦은 빈도의 청소들이 날 잡아 하는 대청소보다 중요한 것 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