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의 기회
식목일이 공휴일에서 빠진 게 언제부터였나 찾아보니 2006년부터란다. 어쩐지, 어릴 때는 식목일에 쉬었던 것 같더라니,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
첫째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 식목일이 되면 아파트 베란다에 화분을 두고 다이소 상추 씨앗이라도 심었다.
주택으로 이사 온 다음부터는 식목일이 더 풍성해졌다. 이 무렵 텃밭에 작물 모종을 심는데, 해마다 뭘 심을까 나름 고민한 끝에 결정을 한다.
보통 내가 욕심껏 이것저것 부르면 남편은 그중에 몇 가지를 쳐내고 서너 가지를 심는다.
올해부터는 볕이 잘 드는 곳에 새로 텃밭 자리를 잡았다. 3주 전부터 한 시즌 지난 낙엽을 치우고, 잡초를 뽑고, 남편의 도움을 얻어(라고 쓰지만 시켰다가 정확한 표현일지도…) 삽으로 땅을 갈아엎었다.
어쩐지 흙이 부족한 것 같아 흙도 주문했다. 없는 게 없는 그곳, 쿠팡에 주문을 하니 28kg이나 되는 흙 한 포대가 다음날 대문 앞으로 배달됐다.
쿠팡맨 아저씨에게 너무 민폐인 것 같아 망설이는 내게, 남편은 우리 집은 집 앞에 차 세우고 대문에 짐 내리기까지 1미터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 했다.
용기를 얻어 주문했고, 다음날 대문 앞에 도착한 묵직한 흙을 질질 끌어 텃밭자리까지 옮겼다. 꽤 무거웠고, 많아 보였는데 쏟아내고 나니 흙을 추가 한 티도 나지 않았다.
좀 더 욕심을 내 냄새 안 난다는 퇴비도 샀다. 한껏 기대하며 샀지만 생각보다 냄새가 꽤 나서, 깜짝 놀라 조금만 쓰고 밀봉해 뒀다. 내심, 저 걸 어떻게 처치해야 하나 고민이다.
그렇게 작디작은 텃밭을 갈고,
거름을 뿌리고,
시간을 줬다.
그리고 식목일이 왔다.
유치원에 다니는 둘째가, 언어전달로 ‘식목일‘을 받아오고, 나무를 심고 발로 흙을 꾹꾹 밟고, 그 위에 물을 줘야 한다고, 여러 차례 얘기했다. 마침 한 달 전쯤 지자체에서 하는 무료 묘목 나눠주기 행사에 신청해서, 열흘 전쯤 자두나무와 매실나무 묘목을 한 주씩 받아왔다.
아이와 함께 심고, 흙을 꾹꾹 밟고, 작은 물조리개로 물도 줬다. 아직은 잎사귀 한 장 안 나온 막대기와 다름없는 상태지만, 언젠간 여기서 매실이 열리고, 자두가 열릴 날을 생각하니 벌써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새 나무를 심으며 마당에 나무들도 한 번 돌아보니, 얘들도 각자 열심히 꽃봉오리를 올리고 있었다. 핑크색, 흰색, 연두색, 저마다 다르지만 추운 겨울 지나 움트는 생명이 기특하고 예뻐 보이는 것을 보니, 나도 이제 나이가 드는가 보다 싶었다.
‘카톡프사에 꽃 올릴 날 얼마 안 남았다.’
봄은 안팎으로 여러 가지를 재정비하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매 해 1월 1일을 앞두고 다이어리를 사고, 새해 다짐을 한다면, 봄이 오면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나 곰처럼 실제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게 된다. 구석구석 집 안 청소를 하고, 마당정리도 하고, 그렇게 몸을 움직이며 잡생각도 떨치고, 잠도 잘 자며, 본격적으로 올 한 해를 잘 살아 낼 준비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올 초 결심한 것들을 다시 한번 체크하고, 조정이 필요한 부분은 조금 손을 봤다.
새 해 첫날 말고,
구정 지나고 말고,
또 한 번의 작심삼일의 기회가 온 것이다!
잘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