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붙잡아보는 행복
살림의 ‘ㅅ’도 하기 싫은 날이 있다. 그런 날은 보통 월요일 오전이다.
주말 내내 네 식구가 복작이며 지낸 흔적들이 방바닥에, 카펫 위에, 식탁 위며 싱크대 안에, 빨래통 속까지 아주 구석구석 알차게도 남아있다.
주말 내 중간중간 치운다고 치워도, 뭘 그렇게 다들 흘린다. 아이들 뿐이 아니라 남편도 뭘 먹다가 자꾸 흘려서, 예전엔 남편에게 심각한 얼굴로 물은 적도 있었다.
“턱 어디에 구멍 난 거 아냐?
다 큰 성인이 이렇게 줄줄 흘리는 게 이상하잖아. “
말하고 둘 다 웃고 지나갔지만, 모두 알다시피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어차피 치울 거, 그냥 둔다. ‘다들 집을 비운 월요일이 오면 치워야지.‘ 하지만, 막상 월요일 아침이 오면 할 일이 쌓였다는 심적 부담감이 밀려온다.
월요일 아침, 남편 출근 후 두 아이를 차례로 라이딩을 하고 돌아오면 9시가 조금 넘는다. 싫든 좋든 할 건 해야 하니까, 차에서 내리면서부터 다시 집안일 시작이다.
마당에 나뒹구는 쓰레기 한 두 개를 집어 쓰레기 봉지에 넣으며 현관으로 향한다. 미리 빨래를 돌리고 나갔다면 와서 널면 되고, 그렇지 않았다면 세탁기 작동부터 시작한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사이 설거지를 하고, 설거지가 끝나면 바닥에 나뒹구는 장난감들을 장난감 통에 넣는다.
바닥이 얼추 치워지면 실리콘 빗자루로 모두 쓸어낸다. 바닥 청소가 끝나고 앉아 차 한잔 하면 빨래가 다 된다. 그럼 또 빨래를 널고, 들어와 홈트를 한다.
특별히 뭘 보고 하진 않고, 배워 온 운동을 스스로 하는 편이다. 다 하면 대략 한 시간쯤 지나있다.
끝나고 나면 배가 많이 고프니 허겁지겁 밥을 먹는다. 헝클어진 머리에 후줄근한 츄리닝, 와구와구 먹는 내 모습은 도망노비가 따로 없을 지경이다. 밥까지 먹고, 씻고 나면 드디어 나만의 시간이 찾아온다.
두 시간 반에서 세 시간 정도!
이 시간을 나는 온 우주, 그 누구보다 알차게 보내고 싶다. 알차게 보낸다는 게 반드시 1분 1초도 허투루 쓰이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방바닥에 대자로 누워 아~무것도 안 하기도 하고,
음악 틀고 살짝 미친사람처럼 춤을 추기도 하며,
근처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기도 하고,
유일한 나의 쇼핑욕구를 채울 겸
마트에 장 보러 가기도 한다.
오늘은 도서관에 가서 책을 한 권 읽고,
얼마 전 출간된 신간 도서 한 권을 더 보기 위해
서점에 가서 한 권을 더 읽었다.
둘 다 가볍게, 후루룩 읽을 책이라 가능했다.
시간은 쉼 없이 달려서 나의 자유시간은 눈 깜짝할 새 끝나지만, 그 시간이 있기에 오후 3시 40분부터 9시 40분까지 6시간 동안 두 아이와 복작이며 지낼 에너지를 얻는다.
그 사이 저녁밥도 해야 하고, 차리고 떠먹여야 하고, 치웠다가 남편이 오면 2차 저녁을 차린다. 저녁 먹고 대충 치우고 둘째를 씻겨 잘 준비를 마치면, 남편이 둘째를 데리고 가 재운다.
아니, 최근에는 둘째가 아빠를 재우는 날도 반 은 되는 것 같지만, 암튼 그렇게 우리 집 두 남자가 잠들면, 나는 ‘넷플릭스에 뭐 없나? 티빙엔 뭐 없나? 디즈니는? 유튜브는?‘ 하고 무언가 볼 걸 찾다가 이내 ‘잠이나 자자.‘ 하고 눕는다.
그렇게 월요일 하루가 마무리된다.
아침엔 살림의 ‘ㅅ’도 하기 싫은 날로 시작했으나, 결국 할 일 하고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누울 때면
‘아, 오늘 하루도 알차게 잘 보냈구나.
수고했어, 나 자신.‘
하고 스스로를 칭찬해 주고 마무리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떤 일을 하던 한껏 위축되던 날들이 있었다. 아마도 첫 아이 출산하고 3년 가까이 그랬던 것 같다. 가끔 전 직장에서,
‘요즘 뭐 하니?‘
‘계속 애만 볼 거니?‘
라며 연락이라도 오는 날에는 괜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일을 안 하고 싶은 게 아니고, 여건이 안되는 걸 어쩌라고…’,
내가 이러려고 초중고 12년에 대학교 5년, 직장생활 5년 그렇게 20년 넘는 시간을 달려온 건가 싶어 자괴감에 힘들어하던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이내 나는 현재의 내 직업, 엄마이자 아내인 포지션을 받아들이게 됐다.
사람이 살면서 한 가지 직업만 가질 수 없듯,
과거 내 직업은 건축 관련 회사원이었고,
현재 내 직업은 주부일 뿐,
다음번 내 직업은 어떤 것이 될지 모를 일이다.
지금은 내 손으로 아이들 키우며 집안일하는 이런 삶이 더없이 행복하다. 이런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나는 정말 복 받았구나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아침에 피곤하다며, 엄마는 집에 있어 좋겠다고 투덜대는 첫째 아이에게
“엄마가 어릴 때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히 살았던 게 지금 이렇게 복으로 받는 중인가 봐.”
하고 말한다.
그리고 틈틈이, 더없이 소중한, 그래서 더 빨리 지나가는 지금 이 시간들을 조금이라도 붙잡아두고자
‘행복‘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이렇게 글로 남겨둔다. 40대의 나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