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혜가 좋아진 이유
그리 비싸지도 않고, 쉽게 구할 수 있는데, 만들기엔 노력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것들이 있다. ‘식혜’도 그런 것 들 중 하나다.
‘식혜와 수정과 중에 어떤 걸 좋아해?’
라는 질문에 내 대답은 늘 수정과였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식혜를 먹을 일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어린 시절, 할머니는 명절, 제사 등 집안 행사가 있을 때마다 ‘감주’라 불리는 식혜를 만들어두셨다. 모두들 맛있게 먹었지만 나는 달짝지근한 허연 물에 팅팅 불어 터진 밥알이 잔뜩 들어있는 게 뭐가 좋은가 싶었다.
그렇게 관심밖의 메뉴였던 식혜를 다시 보게 된 건 최근 들어서다. 아이들이 식혜를 먹기 시작했다.
시작은 그림책이었다. ‘식혜’라는 그림책이 있어 도서관에서 빌려왔는데, 둘째는 물론, 초등 고학년 첫째도 그 책을 재미있어하며 봤다. 그러더니 식혜를 사 달라고 했다. 독후활동의 일환으로 좋지 싶어 마트에서 사다 먹였다.
아이들 입에 식혜가 맞았는지 그 이후로도 일주일에 두어 번은 식혜를 찾았다. 캔에 든 식혜를 사 먹이다가, 근처 가게에서 파는 페트병에 담긴 식혜를 사 먹였는데, 둘 다 내 입엔 너무 달고, 무엇보다 매 번 소용량을 사러 가기가 귀찮았다. (심지어 가게에 식혜가 없는 날도 있다 보니 헛걸음하는 날도 더러 생겼다.)
집 밖에 나가기 귀찮다는 마음이 너무 컸던 건지, 오랜만에 도전정신이 불타오른 건지 모르지만, 난생처음 식혜를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 이럴 땐 결정과 실행이 어찌나 빠른지, 이미 손가락은 쿠팡을 열어 엿기름과 면보를 주문하고 있었다.
‘이젠 내가 식혜까지 하는구나!’
다행히도 유튜브에 선생님이 많다 보니, 생각보다 쉽게 만들 수 있었다. 엿기름, 면포, 물, 밥, 설탕, 약간의 생강가루와 어마어마한 ‘시간’을 들이면 딱 내가 원하는 당도의 식혜가 만들어진다. 한 솥 가득 만드는데 드는 총비용은 밥까지 합쳐도 5천 원 남짓이었다.
엿기름가루를 면보에 넣고 물에 담가 주무르다 밥과 설탕을 섞고 밥솥에서 4시간 발효과정을 거친다. 그 후 물을 더 붓고 생강가루 넣고 거품 건져가며 팔팔 10분 더 끓이면 끝이다.
집에 있는 온갖 물병은 다 꺼내 식혜를 채우고, 냉동에 넣어 꽁꽁 얼렸다가 아이들이 학교,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꺼낸다. 저녁밥 먹은 뒤 디저트로 내어주면, 딱 살얼음 동동 식혜 상태로 먹을 수 있다. 엄마가 만든 식혜가 제일 맛있다며 아이들도 맛있게 먹고, 그 모습을 보는 나도 행복지수가 올라간다.
생각해 보면, 나의 어린 시절에는 돈은 적게 들지만, 시간과 정성을 많이 담아 만드는 음식이나 물건이 비교적 많았다. 엄마는 당신도 몇 번 못 먹어본 피자, 경양식 돈까스 같은 특식을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집에서 만들어줬고, 고장 난 물건은 의례 아빠 손을 거친 후 고쳐 쓰는 게 당연했다.
그렇기에 음식 하나, 물건 하나에 저마다의 스토리가 쌓여있었다.
지금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채로운 맛의 음식과 좋은 품질의 물건을 당장 구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밥 한 끼, 물건 하나의 가치는 예전만 못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이제 보니 ‘스토리’가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신선한 루꼴라가 잔뜩 올라간, 갓 구운 화덕피자를 먹으면서도 어린 시절 엄마가 프라이팬에 구워 준, 밑면이 까맣게 타서 ‘연탄피자’라 불린 그 피자를 더 맛있게 기억할 수 있는 것도, 그 안에 담긴 추억이 소중하기 때문 일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시간이 흐른 뒤에 엄마와 함께 엿기름을 주무르고, 밥솥의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기다리고, 아직 따끈한 식혜 맛을 보는 이 순간들을 기억할까 궁금해졌다.
설령 아이들이 잊는다 해도 괜찮다. 이미 그 순간은 내게 소중한 기억구슬처럼 저장되었고, 그 덕에 이제 나는 식혜를 좋아하게 됐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