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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일이 크니 좀 더 미뤄보자

by 까까멜리아

우리 집은 주택이다 보니 길냥이들이 매일같이 마당에서 목격된다. 단지 내에 캣맘을 자처하신 분들이 있기도 하고, 나 역시 한겨울이 되면 데크 한켠에 고양이 겨울집을 만들어두기 때문에 고양이가 내 집에 오는 게 낯설지는 않다. 오히려 매일 같은 고양이가 찾아오는 게 반갑다.


지나가다 만나는 개, 고양이도 좋아하는 날 보며 아이는 “엄마는 왜 동물을 좋아해?”라고 물었다.


‘글쎄… 왜 좋을까…?’


생각해 보니 친밀감인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고양이는 아니지만 각종 동물(소, 닭, 개, 토끼)들과 가까이에서 자랐기에 내게 있어 동물은 늘 가족보다 조금 멀고 친척보다는 조금 가까운 그 어딘가에 있다.


5월이 돼도 아침저녁으로 꽤 쌀쌀한 날이 이어져 마당 한켠에 둔 고양이 겨울집을 아직 정리하지 않았다. 핑계다. 그냥 귀찮아 미루다 보니 아직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그 집을 이용하던 주인 고양이는 첫째가 ‘치즈냥’이라 부르던 노란 줄무늬가 있는 아이였다. 잠은 우리 집에서 자고, 밥은 옆 집에서 얻어먹던 길냥이인데, 어느 날부터인가 앞 발을 절뚝이는 것 같았다. 걱정하던 차에 단지 내 주민 단톡방에 그 고양이 사진이 올라왔다.


화장실 한 켠에 마련된 고양이 판 위에 앉아서 발에는 붕대를, 목에는 넥카라를 쓴 사진이었다. 겨우내 고양이 밥을 챙겨주시던 옆집 분이었다. (알고 보니 수의사셨다.) 다친 고양이를 수술을 시켰고, 집으로 데려오던 중 탈출했는데,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아 찾아야 하니 보면 제보를 해 달라는 얘기 었다.


그리고 이틀 뒤, 이불빨래를 널러 나갔다가, 우리 집 담장에 딱 붙어 나무 뒤로 길게 누운 고양이를 발견했다. 순간, ‘죽었나…?’ 싶어 너무 깜짝 놀라 잠시 사고가 멈췄다. 정신을 차리고, “야옹?”하고 불렀는데, 세상 귀찮다는 듯이 고개만 삐죽 들어 ‘뭐! 왜?’하는 눈빛을 보냈다. “응, 아니야, 그냥 자던 거 마저 자.”하고 들어와 옆 집 분에게 알렸다.

1차 포획시도는 실패했다.

다음날 또 그 자리에 있는 걸 제보해 2차 시도만에 포획에 성공했다.

‘너는 오래 살 운명인가 보다.’

하고 뒤돌아서며, 다시 데크에 덩그러니 놓인 겨울집을 봤다.


이제 진짜 치워야 할 때다.

치우는 김에 데크에 쌓인 송화가루도 싹 치워야겠다.

물청소 하는 김에 꽃가루 뒤집어쓴 창문도 닦아야 할 것 같다.


아… 그러면 일이 너무 큰데…

조… 조금만 더 미루다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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