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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나는 꼰대다.

by 까까멜리아

묵직한 장난감보관함 겸 전면책장 기능을 하던 소형가구를 정리했다. 정확히는 아직 팔지 않았으니 정리 중이다.

거실과 부엌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던 큼직한 덩어리를 덜어냈음에도, 우리 집 거실은 여전히, 그리고 꾸준히 너저분하다.


바닥에 알집매트는 깔려있지 않지만, 그나마 타협한, 도로가 그려진 파스텔톤 면러그가 한가운데 깔려있고, 그 위에는 각종 바퀴 달린 것들과 그것들의 본부가 늠름하게 자리 잡고 있다.


터울이 꽤 지는 남매를 키우다 보니, 여전히 장난감이 제일 재미있는 둘째가 있는지라, 우리 집은 10년 넘게 늘 장난감과 책으로 어수선한 상태다.


장난감에 대해 잠시 언급하자면, 아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에도 단계가 있다. 몸으로 타고 노는 큰 장난감과 입으로 물고 빠는 소리 나는 장난감의 시기를 지나면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이 공룡, 혹은 자동차의 시기를 보내는데, 지금 우리 집이 딱 그 시기다.(우리 집은 딸도, 시크릿쥬쥬가 아닌 공룡의 시기를 보냈다.) 크고 소리 나는 장난감은 아니지만, 자잘 자잘한 장난감들은 수없이 많은 편이라 더 너저분해 보인다.


계속 쌓아둘 순 없으니, 비정기적으로 장난감을 처분한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 있을 때 몰래 봉지에 담아 바깥 창고에 넣어두고 눈치를 살핀다. 일주일정도 찾지 않으면 그땐 미련 없이 버린다.


둘러보면 내가 사 준 장난감은 별로 없다. 주변에서 가장 늦게 둘째를 낳다 보니, 고맙게도 지인, 친구들로부터 멀끔하고 비싼 장난감들을 많이 물려받았다. 막상 버리려니 또 다 갖고 놀만한 것들이라 못 버리고 매일같이 장난감 수납 테트리스를 하다 보면, 돌을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가 떠오르며 가끔 현타가 온다. 수많은 장난감들을 보며, 나는 어릴 때 뭐 갖고 놀았나 기억을 더듬어봤다.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주로 친구들과 밖에서 놀았다. 도시에서 났지만 시골에서 자란 나는, 동네에서 꽤나 신나게 노는 아이 중 하나였다. 학원은 고사하고 학습지도 해 본 적 없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부리나케 숙제를 하고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고무줄, 동그란 딱지, 비석치기, 종이인형처럼 도구가 필요한 놀이는 물론, 교회 언덕에서 잔디썰매도 타고, 나무도 타고, 땅도 파고, 물 웅덩이에 소금쟁이 구경도 하고, 땅강아지나 사슴벌레도 잡으러 다니고, 폐 자재 주워 모아 아지트도 만들었다.


여름밤이면 저녁 먹고 다 같이 동네 구멍가게 앞 가로등 밑에 모여 훌라후프 돌리기도 하고, 땅강아지도 잡고, 소독차 뒤를 따라다니기도 했다. 매주 주말과 방학에는 할머니댁에 가서 농사 일도 좀 돕고, 소여물과 물도 챙겨주고, 뼛속까지 시린 지하수가 흐르는 농수로에 들어가 물놀이도 했다. 지금 말로 놀이 컨텐츠가 다양했다.


유튜브를 통한 간접체험, 돈을 내고 입장해 시킨 범위 내에서만 잠깐해 보는 직접체험, 그도 아니면 비눗방울, 킥보드, 놀이터처럼 주로 혼자 하는 놀이만 하는 요즘 아이들에 비하면, 나는 복 받은 세대인 것 같다. (물론 이 조차도 철저히 내 기준에서다.)


어린이였던 나의 놀이 대부분은 친구와 함께 하는 것들이었지만, 지금 우리 아이들은 혼자서도 충분히 재미난 세상에서 자라고 있다. 그렇기에 친구나 또래집단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됐고, 남의 시선보다 ‘나’의 호, 불호를 더 잘 알게 된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자기중심적 성향이 강해지는 모습에 걱정스러운 순간들도 종종 보게 된다.


소위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시대와 가치관이 변하며 바뀌는 많은 것들에 유연하게 적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데, 그런 면에서 나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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