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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

단 한 번의 삶

by 까까멜리아

결혼한 지 오래되기도 했지만, 신혼 초에도 양가 부모님이 반찬을 만들어 가져다주시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로 거의 없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 입에 안 맞을까 안 주신 것 같았고, 친정엄마는 대학 때 몇 번을 제외하고는 반찬을 꾸러미로 해서 준 적이 거의 없었다.


처음에는 내심 서운한 맘도 들었다. 주변 친구들은 결혼하면 양가에서 반찬을 너무 많이 주셔서 문제라는데, 나는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이었다.


갖은양념의 ‘갖은’에 뭐뭐가 포함되는지도 몰랐고, 흔히 말하는 ‘적당히’가 얼만큼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뭐 하나 만들어도 맛이 없었다.


특히나 첫째 아이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던 시기는 ‘고난의 행군’ 그 자체였다.

간 하나 안 하고 대충 다져서 끓이면 되는 그 간단한 과정을 해내는데 하루 종일 걸렸다. 13평 작은 집에서 서른한 살의 나는 아이를 등에 업고 서서 아이와 우리 부부가 먹을 것들을 만드는데 온종일, 시간을 다 쓸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것은 그렇게 쌓인 시간은 어디 가지 않았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음식 하는 능력치도 계단식으로 늘었다. 지금은 몇 가지 반찬쯤은 한 시간도 안 걸려 만들 수 있고, 맛도 꽤나 괜찮게 낼 수 있을 만큼 됐다. 재료만 뭐라도 있다면, 반찬배달보다 빠르게 만들 수 있다.


지난주 내내 엄마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전에는 엄마가 젊기도 했지만, 집에 밥 먹여야 할 나도, 동생도 있었기에, 아파도 어떻게든 끼니는 거르지 않았는데, 우리 남매가 모두 독립해 떠나고 부모님 두 분만 계신 후로, 엄마가 아프면 두 분 같이 끼니를 거르거나, 물 말아 대충 드시는 경우가 잦아졌다. 아빠가 좀 해 보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70여 년 평생 스스로 밥 해 먹고살 일 없었던 아빠에게 너무 큰 기대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과적으로 아빠는 은퇴를 했는데, 엄마는 은퇴가 없는 게 안타까웠다.


남편에게 이런 얘길 하자,

“반찬을 좀 만들어서 가져다 드리면 안 되나?

갈비탕 같은 것도 새벽배송 시키고.”

라고 하더니, 이미 9시가 다 된 주말 저녁, 마트 닫기 전에 장 보러 가자며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그렇게 늦은 장보기를 하고, 집에서 몇 가지 반찬을 만들었다.


깐 메추리알을 한 봉 사와 10분 컷 메추리알 장조림을 하고, 집에 있던 감자, 당근으로 감자채, 표고버섯과 채 썬 양파를 볶은 버섯볶음, 염장미역줄기 짠기 빼고 양파와 볶아 미역줄기볶음, 여기에 예전부터 엄마가 종종 해 주던 소고기고추장볶음을 했다.


간단한 반찬으로 휘리릭 돌려, 다섯 가지에 한 시간이 채 안 걸렸다. 널찍한 접시에 펼쳐 식히고, 지퍼백에 담았다.

다음 날, 이 반찬들과, 전날 사 온 과일, 두유, 갈비탕 등을 차에 싣고 엄마 집으로 갔다. 1시간 남짓 거리임에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엄마 집 냉장고에는 반찬이 꽤 많았는데, 모두 오래 보관하고 먹는 맵고 짠 음식들(장아찌류)이 대부분이었다.

그걸 보자 ‘엄마 이렇게 짠 거만 두고 먹으면 안 된다, 두부나 계란 끼니마다 꼭 드셔라.’ 등의 잔소리가 입을 뚫고 랩처럼 쏟아져 나왔다.


한바탕 정리가 끝난 뒤, 세 시간쯤 머물며 오랜만에 엄마랑 얘기도 나누고, 밥도 먹고 돌아왔다. 이젠 반찬 잘하니 이것도 해서 먹어보라며 손질된 마늘쫑을 한가득 내 손에 들려줬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자, 엄마가 맛있게 먹고 있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받은 마늘쫑과 집에 있던 소시지, 어묵으로 밑반찬을 만들고 나도 엄마에게 사진을 보냈다. ‘마늘쫑 처음 해봤는데, 맛있어!!!’라며.


엄마에게 내 손으로 만든 반찬을 가져다줄 수 있어 좋으면서도, 갑자기 엄마가 늙은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엄마가 해준 밥을 매일 먹던, 어렸던 나는 자랐고, 자람을 넘어 이미 늙기 시작했음을 받아들이지만, 그 와중에도 엄마가 늙는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싶지가 않다.


‘부모님이 영원히 곁에 계시는 게 아니다.’


라는 말이, 어릴 땐 그저 ‘효’를 강요하는 말로만 들렸는데, 이젠 그 말이 마음을 긁어내는 것처럼 속상하다.


집에 간 김에, 최근 재미있게 본 에세이 하나를 엄마에게 선물해 주고 왔다. ‘단 한 번의 삶’

부디 엄마도, 단 한 번뿐인 엄마의 삶을 건강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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