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을 즐겨, 그리고 누려.
‘나 자신과의 싸움’
좋은 성적을 낸 운동선수의 인터뷰를 볼 때, 어떠한 역경을 이겨낸 사람의 후기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문구다.
개인적으로는 별로 선호하지 않는 말이다.
‘남이랑 싸우는 것도 싫은데,
굳이 나하고도 싸워야 하나?’
‘왜 꼭 어제보다 나은 내일이어야만 하나?’
이런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느님이나, 부처님, 삼신할머니, 염라대왕 등등 인간의 명을 결정한다고 여겨지는 어떤 존재들이 내 삶의 끝을 언제로 정해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나는 그 사이 가장 행복한 시간을 많이 갖고 싶다.
그러므로 굳이 어제의 나를 넘어서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어제보다 더 잘하고 싶은 그런 날이 오면 노력하는 거고, 힘들면 잠시 멈췄다가 다시 시작하면 될 일이다.
이런 내가 유일하게,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하는 영역이 있다. 바로 ‘전업주부’라는 데서 오는 일말의 자괴감 같은 감정이다.
’ 하우스키핑다이어리‘ 에는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추상적인 것들을 집안일이라는 구체적 활동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매일 비슷한 집안일을 반복하고, 아이들을 돌보다 보면, 대부분의 날은 행복하지만, 어느 날은 슬프다. 그리고 그런 슬픔의 순간은 갑자기 찾아온다.
주말 저녁, 남편이 육아휴직 중인 친구와 연락을 한 뒤 내게 얘기했다.
“00 이가 육아휴직 중인데 집에서 애들 챙기고 하려니 여러모로 답답한가 봐. 그래서 같이 밥이라도 먹으려고.”
그저 일상적인 대화였다. 평소 같았으면
“그래, 맛있는 것도 먹고, 옛날 얘기도 하고 그럼 되겠다.”라고 했을 텐데,
“돌아갈 직장이 있는데 뭐가 답답해, 진짜 답답한 게 뭔지 모르는구먼…”
이라는 말이 툭 튀어나와 버렸다.
‘뭐지…? 나 갱년긴가?’
누구나 그렇듯, 어린 시절 나 역시 우리 부모님의 자부심이었다. 시골에서 청소차 운전하는 아빠의 1등 하는 딸이었고, 엄마에게는 동네 엄마들이 부러워하는 딸이었다. 나중에 자라면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 전문직 여성이 되어, 부모님께 효도도 하고 있을 줄 알았지만, 나의 전문성은 싱크대 앞, 부엌에서 발휘되고 있으니, 대학 교육까지 시켜주신 부모님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 있다.
직업으로 자아실현을 이루는 사람이 얼마나 되랴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스로 돈을 버는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늘 어딘가 위축되고, 나 스스로를 우선순위에서 미루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리고 여기서 오는 감정을 내면에서 다스리지 못하고 가시돋힌 말과 행동으로 밖으로 표출하는 순간이 있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지금은 그저 지나가는 과정 중에 하나다.’,‘내 다음 직업은 어떤 걸 해 볼까? ’이런 느슨한 장밋빛 미래를 그려보는 것도 영 먹히지 않는 날.
오늘이 그런 날이다.
그리하여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하는 날.
내면에 숨어있다가 한번씩 나타나 틱틱대는 못난이 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만하면,’ 을 외치며 긍정적 측면을 보는 나의 싸움이다.
평소엔 잘 먹지 않는 달달한 바닐라라떼를 한 잔 마시고,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헤드셋을 끼고, 일부러 더 몸을 움직이며 집안일을 한다.
밀린 빨래를 돌리고, 인덕션과 조리대, 싱크대, 싱크볼, 식기건조대를 벅벅 문지르며 내 맘에 쌓인 찌꺼기도 같이 닦아내려 노력한다. 반짝이는 상판을 보니 조금 맘이 개운하다. 때마침 바닐라라떼에 들어있던 당이 뇌에 도달했는지, 이내 이성을 되찾는다.
‘몸도 좀 나아지고,
둘째 좀 더 크면 어차피 뭐라도 해야 돼.’
‘아이들 더 크고 나면 지금을 그리워 할 지 몰라.’
‘그래 뭐 어때, 지금을 즐겨, 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