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내가 아이를 낳아도 되려나?

고민 많았던 임신

by 까까멜리아

지금처럼 ‘딩크족’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부터

나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특별히 아이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누군가를 평생 책임지며 키운다는 것도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 중 가장 큰 이유는

혹시라도 내 아이에게 병이 유전되는 일이

일어날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연애를 시작하기 전부터 내 질환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남편은 고맙게도 ‘별거 아니다.’라며 오히려 내게 힘이 되어주었다.

내가 약을 챙겨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여느 연인과 다를 것 없이 사이좋게, 때로는 서로 으르렁거리며 몇 년을 만났다.


그러나 결혼은 엄연히 다른 이야기였다.


남편은 아이를 원했기에 내 계획에 없던 자녀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결혼을 결정한 후 병원에 가서 임신 상담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류머티즘 질환자도 충분히 임신, 출산이 가능하고 그런 사례도 많다고 했다. 유전적 영향도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상담 후에도 내심 걱정은 됐지만 내가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했다.

막연했지만 아이가 없는 삶보다 아이가 있는 삶이 더 다채로울 것 같았다.


‘병원에서도 아무 문제없다잖아.’


라는 생각은 임신, 출산을 더 긍정적으로 이끌었다.

나는 아이를 갖기로 결정했고 주치의 선생님과 상담 끝에 임신 준비를 했다.


우선 기존에 먹던 약을 모두 중단했다.

매일 작은 소염제 한 알만 먹었는데 이렇게 최소 3개월 이상 지난 후에 임신을 시도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직장에서는 프로젝트 팀으로 파견 중이라 한창 업무량이 많던 시기였다. 약도 못 먹는 상태에서 야근과 주말출근까지 강행하려니 몸이 버티지 못했다.

손가락과 손목이 붓고 아팠다. 급기야 어느 날 아침, 평소처럼 일어났는데 걷기가 힘들어진 날도 있었다.

급히 회사에 연락을 해 결근을 알리고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서 고용량의 소염제를 링거로 맞은 후에야 제대로 생활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달을 버텼지만 아이는 찾아오지 않았다.


링거까지 맞는 날이 몇 번 더 반복되자 결단을 내려야 했다.


임신을 포기하거나 직장을 관두거나.


고민이 많았다.

스트레스의 근원이기도 했지만 내 힘으로 들어간 소중한 첫 직장이기에 섣불리 퇴사 결정을 하기 힘들었다.


고민했지만 그래도 결론은 퇴사였다.


회사는 나중에도 갈 수 있지만(그렇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퇴사 후 몸 회복에 집중했다. 몸에 좋은 것들을 먹고 집 근처 천변에서 아침, 저녁 하루 2시간씩 걸었다.

저녁이 되면 천변에서 아주머니들이 모여 단체로 줌바댄스를 했는데 종종 제일 끝 줄에 서서 함께 허우적거리며 줌바댄스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임신은 되지 않았다. 하염없이 시간을 보낼 수 없었기에 중간에 조금 작은 회사로 이직을 했지만 생각보다 높은 업무강도에 그리 오래 다니지는 못했다.


약을 못 먹은 지 일 년 여가 됐을 때,

이제 아이를 포기하고 다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달까지만 기다려보고 안되면 그냥 다시 약을 먹어야겠다 생각했을 때 첫째가 찾아왔다.


난임사례를 들어보면 마음을 비웠을 때 임신이 됐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내 경우가 정말 그랬다.


임신기간은 내내 보통의 임신부와 같았다. 예정일을 9일이나 넘겨 출산한 것을 제외하면 임신부터 출산까지 대부분이 순조로웠다.


첫 번째 출산을 하고 7년이 지나 둘째 아이를 출산했다. 고민 끝에 다시 한번 약을 끊고 지내는 시간이 있었지만 둘째는 생각보다 금방 찾아왔고 쑥쑥 자라 건강하게 태어났다.


아이 낳기를 주저하던 내가 10년이 지나니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종종 아플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


‘혹시 나 때문에 아픈 걸까?’


한 번은 관절부위가 아프다는 아이의 말에 불안한 마음으로 병원을 찾은 일도 있었다. 병원에서 성장통이라는 말을 듣고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불현듯 찾아오는 불안감을 떨쳐내고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아이들 일 앞에서는 담담해지기가 어렵다.


내 몸은 두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의 과정을 거치며 과거에 비해 상태가 안 좋아졌다. 한쪽 손목이 많이 굳어 회전이 어렵고 약의 종류도 용량도 바꾸게 되었다.


하지만 건강한 사람도 아이 둘 낳아 키우다 보면 자연스레 몸은 안 좋아지는 법이다. 게다가 노화까지 얹어지니 어쩌면 힘든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매일 힘든 건 아니다. 대부분의 날들은 컨디션이 괜찮고 안 좋은 날은 가끔 있는데 그런 날은 최대한 몸을 덜 쓰고 휴식을 취하면 나아진다.


요즘 나는 자라는 아이들을 보며 행복하다.

건강하게 태어나 잘 자라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아이들이기에 주변에서

‘넌 아이에게 너무 잘해준다.’

란 소릴 들을 만큼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한다.


내 손으로 밥을 해 먹이고 씻기고 책을 읽어주는 이 순간들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그것은 지금껏 내가 살아오며 경험한 그 어떤 것보다도 완성도 있는 안정감이다. 과거에 지레 겁먹고 아이 낳기를 포기했었다면 평생 몰랐을 감정들이다.


혹시나 아이를 낳고 싶은데 건강이 염려되는 분 들이라면 꼭 병원에서 상담받아보시길 권하고 싶다. 현실은 내가 생각한 시나리오보다 나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