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데?

세상이 끝날 것 같았는데 너무 멀쩡해

by 까까멜리아

컴컴한 방에 누워 혼자 굴 파고 지내며 며칠이 지났다. 곧 죽을 것 같던 내 맘과 달리 몸은 어제와 비슷했다.

정확히는 처방받은 약을 먹기 시작했기에 몸 상태는 아프기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몸이 괜찮아지니 배도 고팠고 먹고 싶은 것들도 생겼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데?‘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들었다.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이전과 비슷한 학교 생활을 지속했다.


병원도 빼먹지 않고 정기적으로 찾아갔다. 당시 나를 진료해 주신 의사 선생님은 아빠 연배의 친절하고 따뜻한 분이셨다. 진료 보러 갈 때마다 희망적인 말을 해주시곤 했는데, 몇 년 지나면 신약이 나올 것이니 걱정 말라는 이야기, 약 잘 챙겨 먹으면 문제없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언제나 웃는 얼굴로 맞아주셨다. 운 좋게도 마음까지 위로해 주는 선생님을 만난 것이다.


그전, 그러니까 아프기 전까지 나의 장래희망은 직업군인이었다. 고3 때 사관학교 시험에 떨어진 후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대학졸업 후 사관후보생(학사사관)에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그만큼 간절히 나는 여군 장교가 되고 싶었다.


대학 진학의 목적이 졸업 후 취직이 아닌 학사학위취득이 되자 가정형편을 고려해 장학금 준다는 학교를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지방에 있는 국립대학교 공대에 입학했다.


당연히 전공엔 이렇다 할 관심이 없이 시작한 대학생활이었다.

그러나 졸업 후 사관후보생 지원하려던 계획이 불가능해지자 다른 동아줄을 찾아야 했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선택이 전공 부여잡기였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 이라지만 플랜 b도 아닌 플랜 d쯤 될법한 이 길을 가는 데는 적응이 필요했다.

당시 나는 입버릇처럼 ‘적성이 뭐 별 건가, 계속하면 그게 적성이지.’라고 되뇌었다. 이런 말로 끊임없이 나 스스로를 설득하며 새로운 생활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다행히 전공은 알면 알 수록 재미있는 분야였다.

그렇게, 처음 진단받은 2학년 때부터 4년간 나는 공부에 매진했다. (나는 5년제 학과 출신이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몸도 마음도 미래도 모두 엉망진창이라고 생각했던 처음과 달리 결과적으로 좋은 일도 많이 생겼다.


나는 발병 초기에 바로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한 경우였기에 약 잘 챙겨 먹고 무리하지 않으면 이전처럼 일상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눈에 띄는 관절의 변형도 일어나지 않았다.


몸 관리한다고 체중도 많이 감량하고 음주가무도 멀리하고 지낸 덕에 날씬한 몸을 갖게 됐다.


손 많이 쓰는 알바 대신 장학금을 받겠다 결심하고 공부를 한 덕에 성적도 꾸준히 좋았다.

그 결과 나는 공대 차석, 학과 수석 졸업자가 됐다.

당연히 취업도 무리 없이 할 수 있었다. 대기업, 공기업은 아니었지만 전공 관련 중견 회사에 졸업 전 입사를 확정 지을 수 있었다.

부모님은 물론 나 역시 너무 기쁘고 뿌듯했다. 5년간 겪었던 많은 일들과 순간순간 나의 노력들을 한꺼번에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무엇보다도 당시 나에게 취업은 밥벌이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처음 진단받고 ‘이제 내 삶은 끝났어.’라고 생각했던 과거로부터 한 단계 성장해, ‘나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을 갖게 된 첫 성취였다.


그렇게 약간의 시련이 있었지만 나는 생각보다 잘 헤쳐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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