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물한 살 봄

이제부터 평생 약을 먹으라고?

by 까까멜리아

대학교 2학년 새 학기였다.

신입생 시절 1년을 남부럽지 않게 음주가무를 즐기며 보내느라 2학년 1학기 장학금이 날아갔다.

2학년부터는 누구보다 부지런히 살고 다음학기엔 장학금도 되찾으리라 다짐했다.


새벽 영어회화 학원을 시작으로 학교수업, 운동,

과외 그리고 다시 학교 과제를 이어가는 빽빽한 일정이 매일같이 이어졌지만 부지런히 사는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자기애가 큰 편이다.




그렇게 몇 주 지난 어느 날 밤.

과제를 하는데 손가락 마디에 욱신거리는 통증이 왔다. 늦은 시간이고 피로가 쌓여 그런가 보다 넘겼다.

얼마 지나자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무겁고 화장실까지 걸어가는 그 짧은 거리, 발을 디딜 때마다 발꿈치가 아팠다.

이상하다 싶었지만 학교 가서 수업받고 오후가 되면 좀 나아지기에 대수롭지 않게 또 넘겼다.

하지만 다시 며칠이 더 지나자 아침에 손가락과 손목이 뻣뻣해서 화장실 둥근 문고리를 돌리는 일조차 불편해졌다.


매일 아침 통증으로 인한 불편함은 지속되었고 오후가 되면 나아지는 일이 반복됐다.




스물한 살이 되도록 병원이란 곳을 가 본 적이 없던지라 이럴 땐 어느 병원에 가야 하는지도 몰랐다.


뼈 부위가 아픈 것 같으니 정형외과에 갔다. 우선 가장 통증이 있던 손가락 x-ray를 찍어봤지만 별 다른 이상이 없다고 했다.

소염진통제를 처방받아먹었지만 다음날 아침에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고 이내 손가락 마디는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조금 더 큰 병원에 갔다.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은 진찰을 하더니 피검사를 하자 했다. 검사결과를 보더니


”류머티즘끼가 있네. “


라며 큰 병원 전문의를 찾아가 보라고 소견서를 써줬다.


‘끼? 그게 무슨 소리지?‘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류머티즘끼? 같은 게 있으니 일단 전문의를 만나보래서, 학교 병원에 가보려고요.”


수화기 너머 엄마는 걱정의 말을 쏟아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큰 병원에 가면 모든 게 해결되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었다.


대학병원이란 곳을 처음 가서 이리저리 헤매다 원무과 담당자를 만났다. 소견서를 보여주며 류머티즘 전문의 선생님을 찾으니 한 분 계셨는데 최근에 개원해서 나가셨다고 했다.


‘거, 참.. 의사 한 번 만나기 복잡하네.’


다음 날, 전문의 선생님이 개원했다는 병원으로 찾아갔다. 드디어 전문의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간단한 문진 후 피검사를 했다.

며칠 뒤 결과를 들으러 다시 내원했고 확실한 진단명이 나왔다.


“류머티즘 관절염이네요. “


잘못들은 줄 알았다.


“관절염이요? 왜요? 류머티즘이 뭐예요?”


라는 내 질문에 ‘자가면역질환’ 중 하나이고

명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나처럼 이른 나이에 발병하는 케이스도 드물지만 있다고 했다.


여기까지 듣자 뭔가 큰일이 내게 닥쳤다는 생각이 들며 갑자기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이후 꾸준히 약 먹으며 치료하면 일상생활에 지장 없고, 사람에 따라 5년 안에 증상이 거의 완화되는

경우도 있으니 너무 큰 걱정은 하지 말라는 당부의 말이 이어졌다.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병원을 나와 다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류머티즘 관절염이래. 근데 약 계속 먹으면 괜찮다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짤막한 내용을 전달한 전화를 끊자 눈물이 났다.


‘왜 하필 나야?‘


‘나 그동안 착하게 열심히 살았는데…

스물한 살에 관절염이라니!‘


‘평생 약을 먹으며 어떻게 살아.’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


인터넷에서 류머티즘 관련 자료를 찾아본 후엔 절망했다. 온통 손가락 관절이 뒤틀리고 비쩍 마른 다리에 무릎이 틀어진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다.


병원에 다녀온 후 한동안은 지나가는 차만 쳐다봤다. 자취하던 집과 학교 사이에 8차선 도로가 있었는데 뛰어들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인터넷에서 본 사진이 떠오를 때마다 내 인생의 결말이 그 모습이라면 그냥 내일 눈이 안 떠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제발 오늘 밤 자는 사이 데려가 달라는

말도 안 되는 기도를 하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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