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출산후 회복, 그땐 몰랐지만 지금은 아는 것들

인생 3회 차

by 까까멜리아

첫 아이 출산 후, 모유수유를 해보겠다고

부단히 노력했다.

처음 석 달은 통증을 참아가며 수유했고

이후 석 달은 수유부도 먹을 수 있다는

소량의 약을 처방받아먹으며 혼합수유했다.


아무리 괜찮다 해도 약을 먹는다는 사실은

혼합수유를 하는 내내 나를 불안하게 했다.

그냥 나는 약 먹고 아이는 분유 먹였으면 될 것을

왜 그리 모유수유에 집착했었나 싶다.


정말이지 ’ 쿨하지 못해 미안해 ‘다.


처음 약 안 먹고 신생아 육아를 하던 석 달.


이 시기에 몸이 많이 망가졌다.

임신 초기부터 오랜 시간 병원을 가지 않다 보니

출산 후 바로 병원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흔히들 건강한 사람도 출산 후엔

손목이 너덜너덜해진다고 한다.

나는 미련하게도 모유수유 중이니 통증은 참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버텼다.

아기띠를 멜 때 목 뒤에서 버클을 잠그고 푸는데

이 간단한 일조차 힘들어지자 병원을 찾아갔다.


당시의 나는 몸과 마음, 환경의 격변을 거치며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이 글을 읽는 치료가 필요한 질환을 가진

초보 엄마가 있다면

부디 늦지 않게 병원부터 가시길 권한다.


병원을 찾아 약을 먹으며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하루종일 육아하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당시 살던 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

5층이었는데, 한번 외출하려면 아이를 앞에 메고

기저귀가방을 뒤에 메고, 유모차를 한 손에 들고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당연히 몸에 무리가 가는 생활이었다.

손목에 이어 무릎까지 나빠지자 서둘러

영끌해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아이가 18개월이 되자 어린이집에 보냈다.

너무 이른 나이에 보내는 것 같아 맘이 안 좋았지만,

몸 이곳저곳에서 이제 한계치임을 알리듯

신호가 왔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이가 어린이집 적응이 끝나자

인근에 수영장을 등록했다.

약해진 몸으로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땐

수영만 한 게 없으니까!

어린이집에 보내며 내가 직접 육아하는 시간도

줄어들고 수영으로 운동도 하니 다시 몸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이 시기 남편이 해외출장을 자주 다녔는데

나 홀로 육아를 해도 몸이 아프거나 처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 시기에 아이 어린이집 보내두고 그 사이

공부해서 전공 자격증도 하나 취득했다.


한 해, 두 해가 금방 가고 아이는 순식간에 성장했다.

다섯 살쯤 되자 육아는 한결 더 수월해졌다.

나도 특별히 아픈 곳 없이 잘 지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첫째 아이가 여덟 살이 되던 해에

둘째를 출산했다.


그리고 2년 여가 지난 지금,

나는 아직도 회복 중이다.


그 사이 더 먹어버린 나이 탓에 첫 출산 때보다

회복 속도가 더딘 것 같지만

이번엔 출산 후 바로 병원을 찾았고

모유수유도 하지 않았다.

살림에 도움이 되는 가전들을 들이면서

집안일도 한결 수월해졌다.


물론 육아도 두 번째인지라

무턱대고 몸을 쓰는 방법 대신

상황에 따라 요령껏 대처하며 지내고 있다.


출산 후 회복은 신체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임신과 출산, 영아기의 육아를 거치는 동안

내 의지대로 시간을 조정할 수 없게 되면서

몸은 물론 마음까지도 안정을 찾기가 어려웠다.


회복이라는 단어를 쓰긴 했으나

출산 전과 같은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므로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과정이라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새로운 삶에 맞는 루틴을 갖게 되면

비로소 심신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심신의 안정은 나 같은 자가면역질환자에게

매우 중요하다.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에 적응을 했으니

나는 다시 운동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이번엔 어떤 운동을 할까 고민하고

고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제 두 아이가 있는 삶에 적응하며

또 한 번의 새로운 나로 살 기회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없던 때의 내 삶이 1회 차라고 한다면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삶이 2회 차,

그리고 지금,

인생 3회 차 느낌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