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애증의 장마철

정신승리

by 까까멜리아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적당히 낮아진 채도,

또렷해지는 주변의 색,

진해지는 풀 냄새,

‘탁탁 타다닥’

딱 멍 때리기 좋은 소리,


사람들의 옷, 신발, 우산 등

평소와 다른 것들이 모여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일.


여러모로

보고 듣는 즐거움이 있다.


여기에 지글지글 튀기듯 구워낸

남이 만든(이게 중요!) 파전과

한잔의 술이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나는 관절염 환자다.


할머니들이 비 오기 전 무릎과 허리를 두드리며

“비가 오려나~” 하는 말이

그저 추임새가 아니라는 걸

20대 중반 무렵부터 알게 됐다.


비 오기 전부터 비가 오는 동안,

기압이 낮아지는 시기가 오면 어김없이

손목, 발목에 통증이 찾아온다.


출산 후부터는 여기에 허리 통증이 추가됐다.


그렇기에 장마철이 오면

몸이 무겁고 어디 한 두 곳이 아픈 상태다.


주택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아파트 고층과 비교할 수 없는 눅눅함도 동반된다.


햇빛 쬐기 어려운 이런 시간이 지속되는

몇 주 동안은 적당한 우울감을 안고 지낸다.


이 시기도 곧 지나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머리가 안다고 몸이 상쾌해지지는 않는다.


이런 시기는 그저 조용히

지나가길 기다리는 게 최선이다.


가만히 에너지를 덜 쓰며 지낸다.


밖에 다니기 좋아하는 성격이지만

이 시기엔 아이들 데리고 외출하는 일도 줄인다.


아이들이 없는 낮 시간에 30분씩 누워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단순한 집밥과 집안일을 하고

책을 읽고, 아이들을 돌보고

남편과 동네를 걸으며 가벼운 운동을 한다.


유난히 길고 폭우가 쏟아붓던 올 장마철에는,

비의 시간이 끝나면 무엇을 할지

하나씩 적어두기 시작했다.


햇볕에 이불과 매트 널기.

환기시키기.

마당에 수영장 펴고 물놀이하기.

아이들과 나들이 가기.

바닷가 다녀오기.

산책하기.

그 외 몇몇 가지 더.


시원한 빗소리를 들으며

하나하나 써 내려가니

이미 이룬 것처럼 재미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비 오는 날을,

하지만 힘든 날을

나만의 방법으로 소소히 즐겨보기로 했다.


길고 긴 장마가 지나가고

리스트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해냈다.


날이 급격히 뜨거워졌지만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 들을 하며

컨디션도 빠르게 돌아왔다.






날씨처럼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불쑥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럴 때 주저앉아 툴툴거려 봐야

나와 내 주변만 좋지 않은 기운으로 물들일 뿐이다.


잠시 웅크리고 있다가

폴짝 뛰어오를 준비를 하는 시간이다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가볍다.


’ 정신승리‘라 불릴지 모르나

원래 인간사 맘먹기 나름이고

생각하기 나름이라 했으니


오늘의 ‘정신승리’가

내 정신건강을 지켜준다면

이것도 썩 괜찮은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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