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주택에서 세 번째 여름을 보내고 있다.
주택으로의 이사를 결정할 때,
내게 다른 선택지는 거의 없었다.
‘궁금하니 주택도 가볼까?’
이 정도의 생각으로 결정을 하기에는
주택살이는 내게 있어 너무나 미지의 영역이었다.
아이의 아토피로 인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서둘러 택하긴 했지만
여름이 다가오며 살짝 두려워지긴 했다.
나를 두렵게 만드는 바로 그 존재.
벌. 레.
개인적으로
‘여름 하’ 자에는 ‘벌레충’ 자가 붙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만큼 내게 있어 여름은 벌레의 계절이다.
나의 곱슬머리 손질을 힘들게 하는
습하고 꿉꿉한 날씨도,
줄줄 흐르는 땀도 별로지만
이 모든 불쾌함 최상단에는 ‘벌레’가 있다.
벌레도 곤충의 카테고리에 속하긴 하지만
내게 ‘곤충’은 관찰의 대상이거나
책에서 보는 존재로 공생 가능한 이들이고,
‘벌레’는 한없이 불쾌하고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는 존재이므로
이 둘은 엄연히 별개의 개념이다.
고로 마당에 있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곤충’이다.
메뚜기, 방아깨비, 사마귀, 개미, 벌 등
다양한 곤충들이 오간다.
이들 중 ‘모기’만 유일한 벌레다.
그래도 그 정도는 괜찮았다.
문단속 잘하고 방충망 잘 관리하면
저들이 나의 생활공간까지 들어올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날개 달린 곤충들만 생각하며 방심하던 그때,
나를 소리 지르게 만든 벌레 한 마리와
계단에서 마주쳤다.
어찌나 놀랐는지 승모근에 담이 온 것 같았다.
메두사를 보면 돌로 변한다던데
내겐 그 순간 그 벌레가 메두사였다.
손가락 한 마디쯤 되는 길이에 다리가 매우 많은,
이름도 모를, 아니 알고 싶지 않은
그 곤충을 우리는 ‘다각충’이라 불렀다.
많을 다 + 다리 각 + 벌레충
그 뒤로 그 다각충을 맞이할 때면
큰 소리로 남편 호출했다.
그때마다 남편은 출동해서 다각충을 잡아내며
”얘는 더러운데 사는 애는 아니야 “라는
이해하지 못할 말을 했다.
‘ 내가 얼마나 더 더럽게 살아야
쟤가 안 온다는 게냐!‘
나중에 아이가 과학책에서
다각충의 본명을 찾았는데 ‘그리마’였다.
‘뭐야, 이름 너무 순수한 느낌이잖아.’
다각충 박멸을 꿈꾸던 어느 날,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말했다.
“엄마, 00이도 ㅁㅁ이네도 주택 사는데
걔네들 집에도 다각충 나온대.”
’이건 피할 수 없는 벌레였구나!‘
주택살이를 한다면 다각충,
아니 그리마와 마주할 담대한 마음과
빠르게 휴지를 가져올 민첩함,
그리고 직접 손이나 발로 잡을 의연함이
꼭 필요하다.
저 세 가지를 가졌다면 여름,
벌레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그 외에 주택에서 맞이하는 여름은 정중동,
조용한 가운데 역동적인 매력이 있는 계절이다.
비가 내리는 날은
바닥에 부딪히며 쪼개지는 빗방울을 볼 수 있고
데크, 어닝, 나무 등 다양한 곳에서 나는
다채로운 빗소리를 들을 수 있다.
비가 내리지 않는 날엔
커다란 이불과 빨래를
햇빛에 바삭바삭 말린다.
반건조 수산물, 건어물들 중
해풍 맞고 건조된 것들이 더 비싸게 팔리는 것처럼,
건조기에서 마른빨래와
햇빛과 바람에 말린 빨래는
코끝을 스치는 상쾌함부터 차원이 다르다.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풀 들은 어찌나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지
한 달에 두 번은
잡초를 제거하고 잔디를 깎아줘야 한다.
책이나 매체에서 가끔 등장하는
‘잡초같이 질긴 생명력’이라는 말,
이 말도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다.
내 손으로 뽑아 던진 잡초가 얼마 뒤
던져진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일어선 모습을
발견한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빨래와 식물 말고도 이벤트는 더 있다.
우리 집에는 두 아이가 있기 때문에
여름이 오면 마당 한가운데 수영장을 편다.
수영장 한쪽 끝에는 파라솔을 꽂아두고
물을 받는다.
집터파크 개장이다.
물놀이하며 마당 한편에 자란 토마토를
똑,똑 따서 간식으로 먹는 일,
이거야 말로 플렉스지.
사실 플렉스는 토마토 먹기 전부터 시작이다.
작은 수영장인데도 물이 어찌나 많이 들어가는지
한참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한참을 받은 물은
많이 놀아야 이삼일이면 끝이다.
물이 너무 아까워 최대한 텃밭에 사용하려 하지만
그렇게 해도 버려지는 양이 꽤 되다 보니
그동안 내가 좋아했던 수영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놀이였던가 돌아보게 됐다.
물놀이 후 이어지는 바비큐는
여름 놀이의 대미를 장식한다.
처음엔 바비큐통과 그릴, 숯 등을 구비해
제. 대.로. 고기를 구워 먹었지만
지금은 아주 가끔만 숯불에 굽고
대부분은 휴대용 버너를 이용한다.
여담이지만 숯불 바비큐의 진짜 제철은
여름이 아닌 가을이기 때문이다.
그 해의 햇고구마가 나오고
저녁 무렵 쌀쌀한 바람이 불어올 때가
숯불 바비큐 황금기라는 것도
주택살이를 하며 알게 됐다.
사계절 중 여름에 할 일이 가장 많다 보니
여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린다.
올여름도 눈 한번 길~~~게 깜빡였더니
어느새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집 근처 길에
초록빛 도토리들이 떨어져 있기 시작했다면
이제 여름을 보내주고
다음 계절을 맞이할 때가 된 것이다.
내 최애 계절, 가을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