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가을날씨
아침에 일어나 라떼를 만들어
바나나와 함께 먹었다.
엄마는 주일 아침 미사를 참석하러 성당으로 가셨고
첫째 아이와 나, 둘이 거실에 앉아 아시안게임
다이빙 결승을 봤다.
온몸이 근육으로 덮인 선수들의 손목, 발목에 있는
보호대가 눈에 띄었다. 그러고 보니 남자 수영
메달리스트들도 어깨와 등에 선명한 부항 자국이
있었던 것 같다.
늘 건강할 것만 같은 운동선수들도 아프구나.
경기장에 선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한 수많은 노력
중에는 고통을 참아내는 순간들도 적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나도 지금 이 순간을 잘 버티고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맘이 조금 생겨났다.
그렇게 약간의 용기를 얻고 엄마가 오신 후,
우리 모녀 3대는 양푼에 밥을 비벼 먹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양푼비빔밥이었다.
그리 맵진 않았지만 그래도 고추장으로 비빈
비빔밥을 먹는 첫째가 많이 컸구나 또 한 번 느꼈다.
점심이 지나고 남편이 둘째를 데리고 왔다.
첫째 병원을 데려가는데 대기가 길 수 있으니
일단 엄마 집에서 둘째와 기다리란다.
집에 가서 둘째를 혼자 보려면 힘들 것 같으니
남편은 본인이 왕복 2시간 운전을 한번 더 하겠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엄마가 저녁까지 차려줘서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은 된장찌개에 밑반찬,
계란, 묵무침이었다. 나도 11년 차 주부지만, 엄마의
된장찌개 맛은 아직도 따라 할 수가 없다.
소울푸드란 이런 거지.
집에 돌아오는 길은 조금 밀려 한 시간 반쯤
걸렸는데 그 시간조차 다리엔 무리가 됐는지,
지난 3주간 고생했던 왼쪽 무릎이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집에 오자마자 2층 침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그대로 누웠다.
다른 가족들은 1층 거실에 있고
나 혼자 침실에 남게 되자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내게 닥친 원인 모를 이 증상들에 화가 난 건지,
무서운 건지, 억울한 건지,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인지,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인지, 아니면 이 모두 다 일지
모르겠다.
나는 사실 두렵다.
수요일이 됐을 때 진료를 못 볼까 봐,
진료를 봐도 의사가 해줄 게 없다고 할까 봐,
이대로 평생 걷지 못하게 될까 봐,
어두운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정말 끝이 없는
수렁에 빠져드는 기분이다.
엄마는 내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엄마는 강한 존재고, 내겐 두 아이들이 있으니
이겨낼 수 있다고!
잠자리에 들기 전, 첫째가 밝은 표정으로
내게 인사하러 왔다.
집에 오니 좋으냐는 나의 물음에 그렇단다.
“그럼 00이라도 집에 먼저 와 있을걸 그랬네~ ”
했더니, 엄마까지 함께 와야 우리 집이 완성된
느낌이라며 엄마도 같이 와서 좋다고 했다.
내 딸이지만 정말 사랑스럽게 잘 자랐다.
가만히 혼자 있는 시간도 많고 맘도 다잡을 겸,
조금 희망적인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책 속에서 발견해 마음에 새긴 문장 하나를
오늘의 일기 말미에 옮겨 적기로 했다.
‘가장 어두운 밤일지라도 언젠가는 그 끝이 오고
해는 떠오르고 말 것이다. -빅토르 위고’
ㅡ‘마음이 흐르는 대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