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무 / 열림원
누구에게나 첫사랑의 추억은 가슴 저민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이재무의 시집 <한 사람이 있었다> 또한 그런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만큼이나 순수하고 애절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시집 첫 장을 넘겨보면 시인의 말이 그런 정서를 더욱 부채질한다.
어릴 적 이웃 마을에 숙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 시절 그녀는 내 세계의 전부였다. 그녀로 인해 아프고 행복했다. 내 시의 베아트리체였던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렇다. 이 시집은 오로지 시인이 갈망했던 한 사람에 대한 기록이다. 중년을 넘어서 초로를 되돌아보게 되는 시인이 기억하는 순수한 사랑의 기억은 그래서 더욱 애틋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한 사람의 있었다>의 첫 시인 「노래를 위하여」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그대가 들을 수 없다면
내가 부르는 노래가
무슨 의미가 있으리오
마치 김춘수의 「꽃」에서처럼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꽃이 될 수 없었던 운명처럼 말이다. 이 시구절은 시인에게 있어서 베아트리체로 기억되는 그녀를 더욱 비중 있는 존재로 각인시킨다. 그런 시인의 정서는 바다, 파도, 바람, 해안선 등 자연적 상관물에서 운명과 사랑의 평행이론, 아포리즘으로 그 층위를 확장시켜 형이상학적인 영역까지 그녀에게 존재론적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나아간다.
2부 「당신을 떠난 뒤」라는 시에서 느껴지는 시인의 정서는 이미 이별을 간파했던 눈먼, 거리의 악사로 분한 시인의 심정을 애절하게 표현한다. 그러기에 그의 연주는 ‘맹목의 초록 더욱 짙게 하고 강물의 수위 높이고 시름겨운 이들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초월의 단계로 나아간다. 고로 사랑의 힘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인 이웃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기적을 잉태하게 되는 것이다.
3부 「소년이었을 때 나는」은 세월의 흐름을 반추하며 시간 속을 거슬러간 시인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매해 반복되는 꽃 피는 봄, 초록 무성한 여름, 홍엽의 가을, 눈 내리는 겨울마다 수시로 시인을 검문하는 계절의 섭리는 아주 오랫동안 느꼈던 그리움의 정한을 극도로 절제한 어휘를 통해 그대로 드러낸다. 진정성을 가지고 베아트리체에게 보내는 헌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시인의 애틋한 마음은 「몽상」이라는 시에서 더욱 그리움의 깊이를 폐부 깊숙이 새기게 한다.
다 저녁 고향 마을
뒷산에 오르면
울음 타는 노을 끌어다 덮고
주인 없는 무덤에 팔베개하고 누워
하늘 들판에 핀
흰 구름송이 눈결에 담아
몽상에 취한 어린 내가
두근두근 첫사랑이 살던
키 작은 동향집 기웃대는
늙은 나 올려다보면 헤실헤실 웃음 짓는다
「몽상」 - 일부
인생에서 의미 있는 누군가를 기억하고 회고하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다. 시인에게 있어 베아트리체였던 그녀를 상정하고 한 권의 시집을 헌사할 만큼 낭만적이고, 용기 있는(?) 시인의 태도에서도 세월에 물들지 않은 순수함은 그대로 묻어난다. 파스텔 톤의 그리움이 배어나는 시집, 그림이 있는 표지에서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애절한 정서는 닿을 수 없는 거리에서 흠모할 수밖에 없었던 이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아픔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그러기에 시인은 아득하고 살아서는 닿을 수 없는 슬프고 높고 외로운 길을 나는 숙명처럼 걷고, 달렸다 나의 길은 너를 향한 길이었다’고 술회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