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름다워라 고려불화여
고려불화는 국제적인 명성이 자자한 작품이자 유물이지만 국내에는 고려 때부터 전해오는 작품이 한 점도 없다고 한다. 고려불화 중 탱화는 160여 점이 전하고 있지만 그 또한 130여 점은 일본의 사찰이나 박물관, 개인 소장 등으로 전해질뿐이라는 사실이다. 이렇듯 고려불화가 제대로 전래되지 못했던 이유는 주변국 일본의 노략질과 조선의 폐불정책으로 인한 반출이 컸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진단한다.
고려불화는 일본에 전해지고 있는 것 중에서도 송나라, 원나라 불화로 둔갑되어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역설적으로 고려불화가 국적을 되찾게 된 것은 일본의 불교 미술사가 구마가이 노부오의 공적이 컸다고 한다. 그가 쓴 논문 <조선불화징>은 송나라, 원나라 불화로 둔갑된 유물의 지위를 원상 복귀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를 계기로 고려 불화와 관련된 저작들이 출간되어, 불화로서의 가치를 드높이게 되었던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괘불로서의 고려탱화는 그것이 두루마리 형식이라는 점에서 실내 봉안용과 야외 법회용으로 나뉜다고 한다. 이 장에서 소개된 <김우문 필 수월관음도>는 괘불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오래 전의 유물이라 보존 상태는 깨끗하지 못하지만 묘사된 필치와 색감은 현대적인 감각을 압도할 만큼 예술적인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현존 고려탱화의 특징을 소개하는 장에서는 두 가지 공통점을 소개한다. 첫째는 제법 아담한 사이즈라는 것, 둘째는 대부분이 고려 후기에 제작된 작품이라는 것이다. 여기서는 도상에 대한 한계성을 지적하고 기법과 형식에 대해서도 지면을 할애한다.
고려탱화의 기법에서 높이 평가받는 것은 무엇보다도 섬세하고 화려한 필치이다.
고려탱화의 가치를 함축적으로 밝혀주는 이 문구는 밑그림과 채색 작업, 무늬를 새기는 작업이 별도의 공정에 이루어지고 있다고 예측하는 저자의 견해처럼 각 영역을 담당한 화공들의 피땀 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아미타여래도는 고려탱화 중에서도 가장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는 도상이라고 저자는 기술하고 있다. 이 장에서는 독존입상도, 독존좌상도, 삼존좌상도, 삼존입상도, 팔대보살도를 사진 도판으로 볼 수 있다.
수월관음도는 고려탱화의 대종을 이루며 고려불화의 진면목을 보여준다고 저자는 기술하고 있다. 이 장에서 소개되고 있는 작품은 서구방 필 수월관음도, 용왕을 곁들인 수월관음도, 혜허 필 수월관음도 등이 있다.
지장보살은 중생이 모두 구제될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는 것을 포기하여 삭발한 스님이나 두건을 쓴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런 지장보살도의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는 지장독존도, 지장삼존도, 지장시왕도 등이 있다. 이들 작품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배경에 거의 유사한 색채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당시 색채의 한계와 세월의 흐름에 따른 보존 상태, 표현 기법 등이 영향을 미친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관음지장도와 마리지천도 또한 지장보살도와 유사한 특징을 보여주지만 관경서품변상도, 관경변상도, 미륵하생경변상도 등을 보면, 이전의 불화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 크기와 화법, 수많은 건물과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인물 묘사가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작품들을 보면, 한두 해 작업을 통해서는 결코 완성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난해한 작품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법기보살도 칠병에서 소개하는 작품은 금물로 그린 <아미타 여래 팔대보살도>, <법기보살 현현도>가 특징적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 작품들은 고려불화와 칠기공예의 정점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이색적인 유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백나한도로 소개된 두 편의 작품은 세월의 흐름 때문인지 그 보존 상태가 썩 좋지는 못하다. 그럼에도 고려시대에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수묵 인물화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그 가치를 설정하는 것이 합당할 듯하다.
일본 고산사의 소장되어 있는 의상과 원효의 진영은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고, 그림의 필치에서 풍기는 세밀한 선과 세월이 흘러 빛은 바랬지만 섬세한 표현미로 통한 색채의 조합이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사찰의 장식 벽화를 소개하는 장에서는 유일하게 전하는 두 점의 벽화를 보여준다. 수덕사 대웅전과 부석사 조사당 벽화가 그것이다. 그마저도 수덕사 대웅전 내벽의 벽화는 한국전쟁 때 파괴되어 사진과 자료를 참조하여 모사한 작품이고, 부석사 조사당 벽화는 거의 형체도 알아보기도 힘들 만큼 그 훼손의 도가 심해 더욱 안타까움을 더한다.
사찰의 후불탱화는 법당의 불상 뒷면을 장식하는 후불벽화를 말한다. 사찰에서 가장 중요한 불화로 취급되는 후불탱화 중에서 소개된 작품으로는 봉정사 대웅전 영산회상 벽화를 들 수 있다. 하지만 군데군데 인물의 얼굴 부분이 대부분 훼손되어 그 가치를 점치기가 쉽지 않다. 단지 고려불화의 분위기만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고려 불화의 종말과 조선의 불화’라는 장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작품은 무위사 극락보전 후불벽화다. 고려불화의 전통을 이어받은 이 작품은 고려불화를 이어받은 명작이지만 임진왜란 이후 불화들은 고려불화의 모습과도 다소 괴리된 양식으로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고려의 불화는 고려청자와 더불어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예술적인 장르로 인식되고 있는 유물이지만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실제로 국내에서 보관하고 있는 작품 또한 겨우 십수 편에 머물 뿐이고, 대부분은 타국에 머무는 상태이니 그 가치를 인식하는 일 또한 쉽지 않은 현실을 부정할 순 없을 것 같다. 고려불화에 대한 관심을 계기로 유물의 보존과 가치에 대한 인식이 더욱 커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