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회화

감상화의 새로운 전통

by 정작가


저자가 고려의 회화에서 처음 언급한 감계화는 장식화, 초상화, 기록화 등과 더불어 실용화로 분류되는 회화의 장르이다. 감계화란 ‘귀감으로 삼을 만한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대표적인 그림으로 <빈풍칠월도>와 <무일도>를 대표적으로 꼽는다. <빈풍칠월도>는 농업과 잠업과 관련된 생활 풍속, <무일도>는 백성을 다스리는 임금의 자세를 표현한 내용의 경전을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많은 초상화가 제작되었다고 저자는 기술한다. 초상화 기록을 보면, 대부분 임금, 공신, 문신, 학자, 승려 등 사회지도층이 중심을 이룬다. 고려는 특히 건국과 동시에 공신 초상을 제작, 봉안하였다고 하는데 귀족과 학자의 초상도 개인 사당이나 서원에 봉안되었음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현존하는 초상화로는 몇 작품 전하지 않는데 <전 공민왕 필 염제신 초상>, <안향 초상>, <강민첨 초상>, <이제현 초상> 등이 그런 작품들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안향 초상>은 과거 교과서에서 접했던 느낌이 있을 정도로 낯익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현재는 소수서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국보 111호로 지정되어 그 우수성과 가치가 입증된 작품으로 볼 수 있겠다.


중국 감상화의 성립 과정을 보면, 8세기 당나라 때 작품을 기원으로 볼 수 있다. 이후 산수화, 화조화가 그림의 장르로 정착하였으며, 회화의 주류는 실용화에서 감상화로, 채색화에서 수묵화로 넘어갔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 하나 중국화의 특징을 보면, 화원풍과 문인화풍의 그림이 두 흐름을 이루며 전개되어 나갔다는 것이다. 화원 그림을 북종화, 문인 그림을 남종화라고 규정하면서 중국화에서 산수화를 중심으로 감상화의 전통이 일어난 시기를 보면, 그 시기가 고려시대에 일치한다고 한다.


고려의 회화사는 송나라와의 회화 교류, 도화원의 성립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이 시대의 유명 화가들은 오세창의 <근역서화징>이라는 저서만 보아도 60명을 헤아린다고 한다. 도화원의 화가로 이름을 남긴 화가에는 화원 이녕과 이광필을 꼽는다. 이들과 관련된 일화는 <고려사>, <열전> 등에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고려시대 회화 장르로 묵죽화(墨竹畫)가 유행을 했던 것은 송나라에서 이를 받아들였던 영향이 크다고 저자는 전한다. 그림이나 사물에 붙이는 시를 의미하는 제시(題詩) 또한 당연히 묵죽화 포함되었고, 이런 제시를 고려시대 가장 잘 쓴 문인으로는 이규보를 꼽는다. 또한, 익제 이제현은 그림을 잘 그리고 즐겼다는 기록이 사서를 통해 전해지고 있으며 임금의 작품 중에서 유명한 그림으로는 공민왕의 <천산대렵도>가 전하기도 한다.


고려시대 전칭 작품으로는 <전 해애 필 세한삼우도>, <증 분황국사 학과 신선>, <일본 상국사 소장 산수도>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서 전칭 작품이란 명확하지는 않지만 전해 내려오면서 전해지기로 특정 인물의 작품이라고 알려진 것을 말한다. 이들 작품들은 오래 전의 작품들임에도 비교적 형태가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고, 제시도 적혀있어 대략적으로 어떤 이유로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는지 단서를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도 고분벽화의 전통은 이어졌다고 한다. 다만 고구려 벽화처럼 일정한 양식은 없고, 벽화의 내용도 일정치 않아 그 가치를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하는 것이 저자의 소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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