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건우
피아니스트 백건우에게 인터뷰어가 묻는 첫 질문은 40년이 넘도록 꾸준히 전진하는 피아니스트로 살아온 것이 놀랍다는 것이다. 여기에 백건우는 그저 운이 좋았다고 대답한다. 요즘에도 매일 여섯 시간씩 피아노를 치며 살아가는 그에게 피아니스트라는 직함은 그 자체로 인생이 된 듯하다. 피아노를 통해 드넓은 음악 세계를 탐구하느라 아직도 하루해가 부족하다고 하는 백건우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진정한 예술가로서 혼이 느껴진다.
그가 여태까지 전곡 연주를 한 작곡가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인터뷰어가 나열한 작곡가만 해도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다 알 수 있는 이들이다.
무소륵스키, 리스트, 라벨, 포레, 쇼팽, 베토벤, 라흐마니노프, 스크랴빈, 프로코피예프…
무소륵스키 작곡가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고향인 러시아행을 간절히 열망했다고도 하는 백건우는 거의 러시아인 되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러시아어 발음에 귀 기울이기도 하고, 무소륵스키의 언어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힘을 쏟기도 했다. 그가 가장 중요한 작곡자로 꼽는 이는 베토벤이고, 베토벤 전곡 연주를 통해 연주자로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고 술회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슈베르트에 빠져 있다고 한다.
이런 작곡자의 세계 안에 몰입하는 백건우의 성향을 인터뷰어는 단순히 악보에 있는 음표만을 보고 배경을 알 것 없이 직관적으로 연주하는 이들도 많다고 하며, 그런 이유에 대한 묻는다. 그 이유로 백건우는 다음과 같은 답을 내놓는다.
이것은 앞으로도 내가 알아가야 할 음악을 위해, 그 재현을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이다.
이런 접근법을 고수하는 이유는 음악의 본질을 실어 나르는 연주가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기 위함이라고 그는 말한다.
음악과 피아노 외에 달리 애정을 쏟을 대상을 묻는 질문에는 그림, 사진, 영상 등 시각적 장르에 마음을 뺏긴다고 한다. 연습하는 동안 청각과 촉각에 집중되었던 감각을 영상을 통해 이미지로 전환시키면서 휴식의 효과를 누리기 위한 방편으로 여기에 관심을 쏟는 것이라고.
흔히 연주해 왔던 고전과 낭만 레퍼토리뿐만 아니라 펜데레츠키의 피아노 협주곡 스페인 초연을 맡은 점도 눈에 띈다고 하는 인터뷰어의 질문에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이 대답에서는 거장을 대하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펜데레츠키와 같은 거장이 그렇듯 열려 있고 겸손하고 자기 작품에 충실을 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왠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음악의 진실을 향한 마음은 연주자나 작곡가나 다르지 않은 거니까. 펜데레츠키는 명성과 지위를 얻으면 흔히 빠지기 쉬운 아집이나 독선이 전혀 없는 작곡가였다.
유명한 예술가의 위치에서도 자기를 객관적으로 제어할 수 있기는 쉽지 않다. 그런 거장의 모습을 보면서 거기에 감동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또한 펜데레츠키와 같은 예술가의 성품을 지는 사람은 아닌지 살펴보게 된다.
다시 태어나도 피아노를 칠 것이라고 말하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그에게 있어 음악과 피아노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영혼의 동반자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