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현 / 시루
세상살이에 지칠 때 누구나 한 번쯤은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홀로 은거하며 살아가고픈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MBN에서 방송하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 중년 남성들에게 공전의 히트작으로 자리 잡은 것 또한 그만큼 팍팍한 현실에 직면한 사람들의 정서를 반영한 측면이 크다. 정작 시골 태생으로 자연이 주는 가치를 알면서도 관련된 책을 읽은 것은 아마도 이 책이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몇 년 전 고향을 방문하면서 느꼈던 기억들은 아직도 어릴 적 추억의 한 자락을 되새김질하게 만든다.
<그래서 산에 산다>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한국판에 비견된다. 저자는 자급 규모의 논밭 농사를 지며 산에서 살아가고 있다. 자연농법의 철학과 실제를 탐구하는 작은 모임인 지구학교 (cafe.daum.net/earthschool)를 열고 있고, 여태까지 여러 권의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이 책은 저자의 산속에서의 삶이 그대로 담겨있다. 이런 삶의 여정을 동행하는데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책을 완독 하는데 열흘 정도의 시간은 소요된 것 같다. 아직 인생을 반추할 나이가 아닌지는 몰라도 전반적으로 책의 내용이 쏙쏙 들어오지는 않는다. 시골 태생이라 공감이 가는 내용도 많긴 했지만 생경한 장면도 많다.
외부에서 보는 것처럼 시골살이가 그리 녹록한 것은 아니다. 산속의 삶 또한 그리 낭만적일 수만은 없다. 도시의 삶에 찌든 사람이라면 시골 생활을 막연하게 동경하게 될지 몰라도 시골의 삶, 특히 산속의 삶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투성이다. 그런 반면 자연이 주는 정서적인 느낌은 도시 생활에 비견할 바가 아니다. 어떤 것이든 이면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 책은 아무래도 산이 주는 장점에 대해 다루고 있는 만큼 여기에 주목하면 좋을 것 같다.
우선 이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점은 여태껏 간과하고 살았던 자연이 주었던 아름다운 기억들을 소환했다는 것이다. 물질문명에 둘러싸여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바삐 살아가면서 정작 중요한 것을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반추해 볼 수 있는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잠시 기억 저편으로 지난 시절의 필름을 돌려보면 항시 자연과 벗 삼아 살았던 시절의 꿈과 같은 추억들이 아롱아롱 피어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학창 시절 집에 도착할 무렵이면 산 이곳저곳에 붉게 물들었던 진달래와 산벚꽃들, 가을이면 주변을 노랗게 물들였던 은행잎들의 향연과 함께 동네 어귀의 오래된 은행나무를 바라보던 기억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저자가 초판 서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은 산의 품에 안겨 살며 그 안에서 겪은 이야기를 엮어 모은 것이다. 산과 그 안의 형제들이라 칭하는 물, 나무, 새, 풀, 바람, 산짐승, 벌레, 바위, 물고기 등이 이 책 내용의 소재이자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테면, 주름조개풀의 서울 나들이에서 주인공은 풀이다. '콩 여섯 알'에서는 이 땅의 소출이 인간의 것만이 아님을 밝힌다.
콩 세 알을 심는다.
한 알은 새를 위해.
한 알은 벌레를 위해.
나머지 한 알은 사람을 위해.
저자는 실제로 세 종류의 배추밭을 운영한다고 한다. 하나는 사람을 위해, 나머지는 배추흰나비, 산토끼를 위해서. 이런 삶을 영위하는 사람 앞에서 나눔의 삶 운운한다는 것이 얼마나 형식적인 가르침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똥오줌 살리기'에 보면 저자가 대통신(大通神)에게 올리는 글이 있다. 대통신은 저자가 지은 똥 신의 다른 이름이다. 일부를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대통신大通神이시여
여기에 당신을 모시는 집 한 채를 지었습니다. 저희는 먹어야 사는 한 편 싸야 합니다. 먹는 일만큼 싸는 일도 귀합니다. 싸면 살고, 못 싸면 죽습니다. (중략)
뒷간의 마룻대를 올리면서 쓴 이 글에는 약간의 해학이 담겨있다. 이는 이전부터 자연 순환의 일부로서 자리하고 있던 똥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내용으로 자연과 합일을 이루는 인간의 삶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바다와 친해지는 길'에서 보면 뉴질랜드 정부가 정해 놓은 고기잡이 법에 소개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내용들을 보면 <그래서 산에 산다>가 단순히 산속의 삶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자연친화적인 삶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더 바랄 게 없는 산속의 삶'이란 화보에서는 고즈넉한 산속 길, 벼 베는 풍경, 산집, 산열매와 과실 등의 소박하지만 산속의 풍경들을 통해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소개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4장의 친구들 편이다. 쌀바구미, 청설모, 집쥐, 뱀, 파리, 노루, 고라니, 멧돼재지, 땅벌, 멧비둘기, 진드기, 노랑턱멧새, 고추잠자리, 말벌 등 산속에 살아가면서 함께할 수밖에 없는 친구들(?)과의 일화를 보면, 산속에서의 삶이 외로운 것만은 아님을 실감할 수 있다. 책의 말미에는 저자가 지은 시와 산과 관련된 내용의 하이쿠도 몇 편 소개되어 있다.
<그래서 산에 산다>는 여태껏 읽었던 책들과는 전혀 결이 다르다. 부와 재테크를 말하는 경제 서적도 아니고, 경쟁 사회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노력을 강조하는 자기 계발 서적도 아니다. 그동안 자본주의에 예속되어 산다는 이유로 발버둥 치듯 경제와 자기 계발서 위주로 책을 읽어온 것이 사실이지만 실로 오랜만에 이런 책을 읽고 보니 여태껏 살아온 인생의 방향이 과연 제대로 된 것일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큰 걱정 없이 유년시절을 보냈던, 가난했지만 자연과 함께 살았던 그날들이 오히려 지금 꿈꾸는 미래의 이상향이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욕망의 속성은 끝이 없다는 데 있다. 채우면 채울수록 더욱 헛헛해질 수밖에 없는 물질적인 욕망에 비하여 저자처럼 자연과 벗 삼아 살아가는 삶이란 얼마나 풍요로운 삶인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인생의 긴 수레바퀴를 돌아 다시 원점으로 온 기분이다. 아무런 욕심 없이 즐겁게 웃으며 들판을 뛰어다녔던 그 시절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