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주 / 효형출판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는 영화를 철학적인 견지에서 해석한 일종의 영화를 위한 철학에세이라고 해도 좋다. 철학적인 관점에서 영화를 보게 되면 그저 단순히 영화를 관람하던 습관에서 벗어나 ‘사유를 통한 영화 읽기’가 가능해진다. 또한 영화 비평의 수준을 한껏 높일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사실, 철학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골이 아파오기 마련이다. 그만큼 철학은 우리에겐 범접하기 어려운 학문으로 여겼던 것이 사실이다. 철학이 아무리 문턱을 낮춘다 해도 언감생심 발을 내디딜 수도 없을 만큼 멀게만 느껴지는 것은,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실용적인 가치에만 매몰되었던 이유가 크다. 눈을 돌려 인간의 삶에 대한 근원적인 가치를 좇다 보면 당연히 물질적인 가치에 함몰되지 않고, 인간 본연의 가치를 찾아가기 마련이다. 그나마 우리에게 친근한 영화를 통해 철학적인 사유의 즐거움을 누리려고 한다면 이 책은 그에 부합된 텍스트라고 할 만하다.
책을 읽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교양을 증진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또한 지적인 쾌락을 누림으로써 사유의 즐거움을 한층 고양시키려는 이유도 있다. 이 중에서 특히 지적인 쾌락을 향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독서의 가치는 빛을 발한다. 더군다나 이 책을 통해 쉽게 접해보지 않았던 철학과 영화를 결부시켜 본다면 즐거움은 배가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은 스크린을 통해 영화를 보는 시각적인 즐거움을 압도한다. 이런 즐거움은 철학적인 사유를 기반으로 하여 마치 독서를 통해 행간의 의미를 읽어내듯, 영화 속에 응축된 사상의 가치를 누에고치가 실을 뽑아내듯이 읽어낼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일종의 영화 읽기라고 표현할 수 있는 이런 작업들은 아무 생각 없이 스크린을 응시했던 습관에서 벗어나 사상의 편린들과 영상이 합치된 가상의 조형물을 직조할 수 있는 창조성의 발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관객의 수준에 따라 영화를 해석하는 시점은 크게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철학과 결부된 영화 읽기는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향상하는 데 기여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 책에는 총 29편의 영화가 소개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영화의 제목을 보면 영화 간의 연관성은 그리 치밀해 보이지 않는다. 다만 몇 개의 꼭지에 영화를 서너 편 묶어놓고, 그에 대한 담론을 투영시킨 것이 극명하게 드러날 뿐이다. 그렇더라도 여기에 소개된 영화들이 사상적인 측면에서 다른 영화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영화 읽기에 접근한다면 남다른 자부심으로 영화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단지 보이는 것이 가장 적확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철학적인 견지에서 보면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가 그런 가치를 압도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저 스크린에 투영된 영상 속에 응축된 이미지만을 볼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내재된 사상의 가치를 끄집어내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이 책에서 특징지을 수 있는 것은 한 편의 영화마다 철학자를 배치해 놓고, 그 사상을 토대로 영화에 접근한다는 데 있다. 가령 영화「트루먼 쇼」에서는 철학자 들뢰즈의 ‘유목민’을 다룬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칸트, 라캉, 베르그송, 사르트르, 푸코, 파스칼, 에리히 프롬, 공자, 니체, 프로이트, 장자, 하이데거, 헤겔,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철학자들을 만날 수 있다. 여기에서 다루는 철학자들이 어떤 기준에 의해 선정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저자의 입장에서 다루려는 사상의 가치를 대표하는 인물인 것만 확실하다. 그렇다면 이런 철학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철학의 세계에 조금이나마 접근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면 나름의 의미는 충분하리라고 본다.
영화는 인간의 삶을 반영한 산물이다. 이런 매체의 특성상 철학이 결부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철학은 인간의 특성을 좀 더 세부적으로 해부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한 편의 영화 속에서 숨겨진 메시지를 읽어내는 작업은 흡사 보물 찾기와도 비견될 수 있다. 찾는 과정에서는 애가타지만 막상 찾고 나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희열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더군다나 남들이 쉽게 찾아내지 못하는 숨겨진 가치를 건져 올릴 수 있기라도 한다면 영화를 보는 즐거움은 한층 고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