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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의 내 인생의 역사 공부

강만길 / 창비

by 정작가

<강만길의 내 인생의 역사 공부>는 공부의 시대 시리즈 중 하나다. 일찌감치 유시민의 <공감필법>을 통해 접했던 이 시리즈는 강연내용을 책으로 만들었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구어체라 술술 읽히는 것도 강점이다. 이번에는 역사 공부라 관심이 컸다. 최근 들어 한국의 고대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는 과연 어떤 식으로 역사를 바라볼까 궁금했던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역사학자인 저자의 연구 분야는 조선 후기와 근, 현대 역사를 주로 다루고 있어서 고대사에 대한 기대는 살짝 접기로 했다.

평생 역사에 대한 연구를 하며 살아온 저자이기에 스스로를 ‘퇴물 역사선생’으로 소개하고 있는 강만길 선생은 그의 엄청난 연구 업적을 두고도 겸허한 자세로 역사를 대하는 인물임을 알게 된다. 일제치하에서 소학교를 다녔던 강만길 선생은 일본역사만 배우던 시대에서 해방 후 우리 역사를 배우면서 흥미를 갖게 되었고, 대학에서도 당시에는 비인기학과였던 사학과를 지망했다고 한다.


저자에 의하면 역사학을 연구하는 부류에는 실증주의 사학, 사회경제사학, 민족주의 사학이 자리하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대부분 실증주의 사학이 주류를 이룬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경제사학은 유물사관 경제사학으로 반공을 국시로 하던 당시 시대상황에서는 꽃피우기 힘든 분야였을 테고, 민족주의 사학의 노선을 걷던 박은식, 신채호와 같은 분들은 독립운동을 하다 일찍이 유명을 달리하였으니 그 맥이 이어지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일제 강점기에 큰 영향을 받았던 실증사학이 우리 역사의 주류가 되었던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밖에 없다. 참고로 실증사학은 실증주의사학을 말하는 것으로 이병도, 김상기, 고유섭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며 문헌고증에 의한 실증적 방법으로 역사를 연구하려는 경향을 일컫는다. 그러니 우리 고대사의 단군이 역사가 아닌 신화가 되고, 대륙을 호령하던 동이족은 반도사관에 묶여 그 강고한 역사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우리는 일제의 계략대로 왜곡되고 축소된 역사 교육의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해방 이후 친일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마당에 역사 또한 그런 길을 밟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우리 민족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해방된 이후에도 역사는 반쪽짜리였다. 남과 북이 갈라졌기 때문이다. 주변 열강들의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된 상징인 38선은 거의 비슷한 구역으로 전쟁 후 휴전선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전쟁 전이나 후나 그런 분단 체제가 존속되어야 그들에게 유리할 뿐, 한 민족의 고통과 아픔 따위는 그들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도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지속되어야 하며, 특히 역사 교육은 올바르게 정립되어야 한다. 저자인 강만길 선생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불행한 민족분단을 극복하고 평화통일을 지향해야 할 지금에는 독립운동사 교육에서 좌익 독립운동도 가르쳐야 하고, 특히 좌우익 통일전선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동안 개인적으로도 역사 교육을 받으면서 왜 역사책에는 독립운동에 대해 고작 몇 줄 밖에 기술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독립운동을 하던 세력들이 정치적인 입지를 구축했더라면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생각해 보면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해방이 된 지는 6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역사 교육이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역사 교육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진보와 보수의 논쟁이 뜨겁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무엇이 진보이고 보수인지 제대로 분간이 가지 않을 때가 많다. 책의 말미에 보면 그런 혼란스러운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는 대목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 근대사회 이후를 보았을 때 진보주의가 곧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가리키고 보수주의가 곧 왕권주의나 자본주의 지향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어느 시기의 현실적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생각과 입장이 강한 사람을 보수주의자라 할 수 있고, 현실적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그것을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는 생각과 입장이 강한 사람을 진보주의자라 할 수 있습니다.


저자가 백범 김구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한 것을 보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가하고 임정 사수파가 된 것은 보수주의자요, 일제강점체제에 안주하지 않고 그 체제를 청산하기 위해 독립운동에 투신한 것은 진보주의자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진보나 보수를 규정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지 어떤 사상과 행동 양식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을 맹목적이며 획일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할 수 있다.


책의 말미에는 당시 청중들을 상대로 묻고 답한 내용들이 ‘묻고 답하기’라는 부록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소개된 내용 말고도 역사에 대한 진솔한 질문을 스스로에 던져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강만길의 내 인생의 역사공부>에서는 조선 후기에서부터 일제 강점기, 해방과 전쟁, 분단기에 이르는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역사를 통해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를 제시해 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처럼 역사는 보이지 않는 미래를 밝혀주는 등불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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