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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박훈 / 민음사

by 정작가


근대 일본을 알고자 한다면 당연히 메이지 유신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한다. 왜냐하면 메이지 유신을 빼놓고서는 근대 일본의 역사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메이지 유신은 일본 역사에서 엄청난 변혁을 일으킨 대사건이라고 할만하다.《손자》 모공 편에서 보면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는 말이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의 한자성어이다. 갈수록 우경화되고 있는 일본을 보면 과거에 역사적으로 아픈 기억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의 일본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앞으로 전개될 일본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다시금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과 같은 전쟁으로 세상을 혼란의 소용돌이에 몰고 갈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매사에 대비하지 않는다면 과거처럼 치욕적인 역사를 반복하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꼭 그것만은 아니더라도 19세기에 동양에서 유일하게 근대화를 이루고, 세계 강대국과 나란히 어깨를 겨뤘던 일본의 성장과정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할 것이라는 생각에 이 책을 골랐다.


메이지 유신과 관련된 책은 서점에서도 찾기 힘들 만큼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메이지 유신이 탄생한 배경과 성공 요인을 정리해 놓은 책이라도 한 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한참을 헤맨 끝에 고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책은 그리 두껍지 않았지만 ‘서울대 인문 강의’ 시리즈라는 사실에 매료되었고, 책의 구성 또한 깔끔해서 개괄적으로 메이지 유신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이해할 수 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명치유신(明治維新)이라고도 하는 메이지 유신이 탄생한 배경에는 일본의 지리적인 배경이 큰 역할을 했다. 임진왜란 이후 이렇다 할 전쟁 없이 200년이 넘는 막부체제를 이어온 도쿠가와막부의 사무라이들은 존재의 의의를 잃어버렸다. 관료의 말단 실무자로 전락해 버린 이들에게 유학은 사대부, 즉 ‘칼 찬 사무라이’로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일본은 조선처럼 쇄국정책을 펼치지 않고 신속한 개항을 통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이후로 급성장했다. 또한 기존의 막부체제에서 메이지 천황으로 시작된 왕정복고로의 이행과정이 평화적인 정권 이양이라는 역사적으로도 찾아보기 쉽지 않은 사례라는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일본은 큰 출혈 없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특히 당시로서는 동양에서 거의 독보적으로 대규모의 유학생들을 파견하는 등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정성을 쏟았다. 조선이 서양의 개항 요구에 맞서 쇄국정책을 펼치는 사이 일본은 평화롭게 막부 체제를 유지해 오면서도 세계의 흐름을 주시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과장된 위기감’은 조선처럼 쇄국정책 대신 체제 변혁을 위한 메이지 유신을 택했고, 근대 일본의 설계자들은 이를 계기로 일본을 근대 국가로 완전히 재편시키게 된 것이다.


메이지 유신의 성공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있겠지만 특히 시대의 흐름에 기민하게 대처한 이들의 공로가 컸다. 그들은 서양 문물을 통해 부강한 근대 국가를 만들려는 의지도 있었지만 대규모 유학생의 파견 등 인재 양성을 위한 투자에도 적극적인 자세를 취한 결과 강력한 근대 국가인 일본의 토대를 세우는데 일조했던 것이다.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는 단순히 체제를 변혁시킨 일본의 역사적 사실을 고찰하려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개인에게 적용했을 때 어떤 결과를 돌출할 수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텍스트로서도 가치는 크다고 하겠다. 변화무쌍한 시대에 현실에 안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다시금 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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