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안할 때 논어를 읽는다

판덩 / 미디어숲

by 정작가

동양권 최고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논어》는 그 유명세를 알고는 있었지만 첫 장을 넘기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것도 원서도 아니고, 원서를 해석한 주해서도 아니면서 《논어》를 읽은 지은이의 생각이 담긴 자기 계발서를 읽은 것이라면 몇 다리를 건넌 셈이다. <나는 불안할 때 논어를 읽는다>는 그런 한계점을 지닌 도서다.


논어는 제1편 학이부터 제20편 요왈까지 구성되어 있는데 이 책은 제1편 학위, 제2편 위정, 제3편 팔일까지 논어의 원문을 소개하고, 지은이의 견해를 담았다. 《논어》를 읽었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이름조차 생소한 판덩이라는 저자가 읽은 논어에 대한 생각이 어떤 객관성을 담보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논어의 원문을 소개하고 그와 관련된 자신의 생각을 거의 의식의 흐름 수준으로 나열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가 맺는말에서 《논어》의 모든 문장에 담긴 본래의 정수를 복원해야 되겠다는 바람과는 대조적으로 책을 읽는 동안 집중하기 쉽지 않았던 것은 문체의 산만함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통일성이 없이 저자의 의지대로 심리학, 물리학, 사회학, 경영학 등 현대의 학문들과 연결점을 찾으려고 무리한 시도(?)를 한 결과 《논어》가 말하고자 하는 본래의 의미가 상당 부분 희석된 듯한 느낌도 들기 때문이다.


《논어》라는 고전은 워낙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책이라서 그 가치를 담보하고 있겠지만 받아들이는 독자의 수준에 따라서 편차가 큰 것도 사실이다. 심오한 진리를 담고 있는 이 고전을 전체적으로 한 번도 읽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다른 이의 의견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또한 원저자의 뜻에 다다르지 못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선 몇 다리 건넌 책을 읽기보다 비록 원서는 아니더라도 주해서부터 읽은 후 이런 종류의 책을 읽는 것이 순서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을 통해 비록 3편 정도의 《논어》를 읽은 것도 나름 의미 있는 경험이긴 했지만 그 내용이 현실적으로 딱히 와닿지는 않았다. 《논어》자체가 고서이기도하거니와 유교에서 추구하는 예법이나 효도, 군자의 도, 권력자의 속성 등 현실과는 제법 거리가 있는 내용이다 보니 원서를 해석하고 풀어놓은 내용에서도 내용이 딱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것들을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온전한 이해가 필요할 텐데 그러려면 적어도 몇 번 정도는 반복해서 읽어야 그 의미를 조금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치 도덕 교과서를 읽는 것처럼 책을 읽는 동안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지당한 말씀(?)이라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그것이 뇌리에 어떤 신선한 충격파를 안겨줄 정도로 자극을 주지는 않았다. 이런 느낌은 순전히 개인적인 역량에 기인한 것일 뿐, 인류의 고전인 《논어》 자체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아직 《논어》와 같은 고전을 읽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깨달음이라면 깨달음이랄까.


우리는 진리를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이를 실천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고, 저자가 느끼고 있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그런 것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나서 아주 작은 깨달음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책을 읽은 보람을 찾을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느낀 점은 간단하다. 고전은 가급적이면 원서를 읽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 정도가 아니라도 최소한 주해본 정도는 읽어야 원저자가 주장하는 의미를 깨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불안할 때 논어를 읽는다>는 반면교사로서 책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 다시금 사유할 수 있게 만들었던 텍스트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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