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밥이다

김경집 / 알에이치코리아

by 정작가


<인문학은 밥이다>는 책 제목처럼 인간에게 필요한 다양한 지적영양소를 제공하고 있는 영양만점의 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학, 종교, 심리학, 역사, 과학, 문학, 미술, 음악, 정치, 경제, 환경, 젠더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지적 성찰과 예술적인 가치, 현실과 밀접한 주제를 위주로 사유할 수 있는 장(場)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인문학자 김경집의 30년 공부 결정체’라는 홍보문구가 무색하지 않게 작정하고 썼다는 생각이 들 만큼 다양한 주제와 그에 상응하는 책의 두께는 함부로 범접하기 힘든 아우라를 발산하고 있다. 이런 다양성의 발현은 저자의 이력을 보면 조금 이해가 갈 만하다. 저자도 밝히고 있다시피 인간학이라는 것이 그저 한 두 분야만 알아가지고는 성취를 이루기 힘든 학문이기 때문이다. 하긴 인간학이라는 범주에 속하지 않는 학문을 찾기가 오히려 힘들 만큼 세상의 학문은 거의가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니 여기에 언급된 열몇 가지의 주제로도 모자란 것이 인간학이라고 보면 저자가 그토록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충분히 곱씹어 볼 수 있다.


인문학을 좁은 의미로 규정하게 되면 문학, 역사, 철학의 범주로 한정할 수 있는데 그런 구분조차 무의미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런 분야들 이외에도 인문학으로 포괄할 수 있는 범위가 거의 무한정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마음의 깊이를 더하는 인문학, 진보하는 인류와 인문학, 감성을 깨우는 인문학으로 색깔을 입힌 것은 인문학의 자연스러운 확장성에 무게를 준 듯한 인상을 받는다. 이 책이 여러 분야를 다루고 있음에도 진부한 이론서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각 분야마다 저자의 고유한 관점에서 주제를 관통할 수 있는 핵심 제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이유가 크다.


철학은 인문학을 대표하는 주자로서 가장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철학의 범위는 워낙 방대해서 그 모든 것들을 다루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철학자인 강신주가 <철학 VS 철학>이라는 책을 통해 동서양을 망라한 철학을 집대성하려는 시도를 한 것도 이 분야에 대한 조망권을 획득하기 위한 바람은 아니었을까 싶다. 적어도 철학자라면 그런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것쯤으로 받아들여도 전혀 어색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정반대다. 철학이란 분야를 다루면서도 전체를 조망하기보다는 유의미한 철학자들을 등장시켜 철학의 의미를 개괄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칼 포퍼를 통해 철학의 원류가 되는 핵심 사상을 드높였던 대표 철학자들을 등장시키는 것만으로도 그런 의지를 충족시킬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경험론과 합리론, 동양 철학에 대한 언급만으로도 인문학의 한 분야로서 철학을 다루는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라고 한다면 여기서 다룬 철학자들을 눈여겨볼 이유는 충분할 것이다.


종교가 ‘죽음에 대한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 장에 소개된 명언처럼. 〈문명의 충돌〉을 쓴 새뮤얼 헌팅턴의 비판은 차치한다고 하더라도 이 장에서 종교는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부정적으로 인식의 틀을 파고든다. ‘종교가 사회를 걱정하지 않고, 사회가 종교를 걱정하는 세상’이라는 저자의 인식에는 ‘신성하고 거룩하고 영적이며 신적인’ 것들이 거세당한 채 세상의 온갖 부조리와 동일선상에서 종교적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는 종교가 더 이상 세상의 악을 몰아내고 선을 지향하는 본래의 의도대로 바로 설 수 있는지에 대한 부정적인 물음표에 다름 아니다. 이런 인식은 ‘유일신 종교는 과연 우월한가’하는 식으로 확대되어 간다. 종교적인 기원 형태로서 우월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다신교가 세월의 흐름에 밀려 일신교로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세속 권력과 유착관계 내지는 그보다 더한 권력적 우위를 점한 측면에서 볼 때 종교의 변형성은 그 순수한 가치를 세속에 내줄 수밖에 없는 저속한 흐름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단적인 사례로 종교전쟁, 마녀사냥 등이 그런 표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고로 종교라는 것은 결국 인간의 인식과 괘를 같이하는 것으로 인간 문명의 한 가닥에서 이해해야 할 성질의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많은 종교 중에서 절대 종교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오로지 주관적인 가치관이나 통념으로 규정된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완벽하다고 할 종교는 없을 것이다. 수많은 다신교가 그렇고 일신교로서 같은 맥을 이어오고 있는 조로아스터교,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가 그렇다. 그러니 각자의 종교를 존중하고 종교를 ‘또 하나의 기회’로 삼아 인류의 평화 공존에 이바지할 수 있는 매개체로 삼아 ‘종교 안에서 인간의 가치’를 추구하고 구현하는 것이 답일 수도 있겠다. 저자가 주창한 것처럼 말이다.


심리학은 이제 전공을 한 학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요즘 출판시장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심리학의 위상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심리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자로 추앙받고 있는 빌헬름 분트와 프로이트를 시작으로 하여 왓슨과 스키너의 행동주의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심리학자들이 등장한다. 무의식과 원형, 게슈탈트 심리학, 억압과 방어기제라는 다소 개념조차 생소한 용어들로 인해 혼란을 느낄 수 있지만 현재 심리학이 새로운 강자로 대두되고 있는 뇌 과학 분야로까지 확장하고 발전해 가는 심리학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면 큰 부담은 느끼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라는 말은 그만큼 역사의 서술과정이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의도적이거나 혹은 편향성이 짙은 역사 기술이 진정한 역사 이해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저자의 인식에 공감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서양 위주로 세계사 흐름을 주도해 온 관행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 책에서는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접근을 통해 올바른 역사 인식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역사를 제대로 바라볼 줄 아는 혜안을 기르는 것은 결국 인문학적인 가치를 드높이는데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의 방향성이 미래를 향하고 있다면 역사는 과거의 인식을 토대로 현재의 가치를 재단할 수 있는 방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은 언뜻 보면 인문학과는 다소 괴리감이 있는 학문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과학은 인간 자체를 다루기보다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물질을 주로 연구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과학이 인간의 삶에 미친 영향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방대하기 때문에 이를 논외로 한다는 것은 인문학을 다루는 측면에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과학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는 개념을 탄생시킨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를 기점으로 아이작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같은 역작을 중점으로 다룬다. 또한 토마스 쿤, 파인만, 스티븐 제일굴드, 정재승, 최성일 등 대중에게 과학을 전파한 공로가 있는 과학자들을 언급하며 이들의 노력처럼 많은 과학자들이 과학의 대중화에 기여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과학은 원자포탄 발명으로 인한 비극, 다윈의 진화론을 악용한 나치의 인종청소처럼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 만큼 인문학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한 접근이 필요한 분야가 아닐 수 없다.


문학의 장르는 많다. 흔히 알려진 시나 소설 이외에도 희곡, 시나리오, 수필 등 다양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그 어떤 장르보다 희곡을 최고의 인문학 교재로 꼽고 있다. 인문학의 총체적 경험인 연극개론 수업에서 인문학적인 가치를 찾고 그 속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확장해 가자는 것이다. 시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일본의 하이쿠에 대해 다루고 있다. 스토리텔링에서는 톨킨의 <반지의 제왕>,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등의 판타지 소설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초대형 베스트셀러인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를 통해 이야기가 주는 거대한 힘의 마력을 드러내준다.


인문학을 다루는 분야에서 예술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일지 모르겠다. 인간이 주체적으로 자신을 표현하고자 욕구는 어쩌면 태곳적부터 이어 내려오는 인간의 본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수많은 예술 분야 중에서 우리들에게 가장 친숙한 미술과 음악에 대해 다루고 있다.


미술에서는 현대 미술의 추상성을 비판한다.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흐름은 ‘낯설게 하기’의 극단적인 성향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런 예술의 행보는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는데 기여하기보다 오히려 멀어지게 한다. 그런 예술은 저자의 인식처럼 ‘불친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예술의 성향은 미적 기준의 판단이었던 재현미가 표현미로 변화하는 세태의 흐름에 따른 것이지만 예술조차도 돈과 권력의 마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재의 상황을 본다면 인문학적인 가치와는 다소 멀어진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가울 수밖에 없다.


음악에서는 하이든, 베토벤, 모차르트 같은 음악의 거장들을 다룬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상식을 깨는 오해와 편견의 때를 벗겨내고 보면 유명한 음악의 탄생을 가져온 거장들의 노력과 투혼, 고뇌 등을 읽을 수 있다. 음악의 고정관념을 깨버린 존 케이지의 침묵, 분노와 저항의 수단으로 탄생했던 랩의 역사, 한국 랩의 영원한 전설로 자리매김할 서태지, 한류 열풍 등은 음악적인 관점에서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사유 거리를 제공하는 것들이다.


정치, 경제 분야는 인문학적인 가치와 다소 배치되는 분야가 아닐 수 없다. 정치는 무릇인간을 향해야 하지만 그런 기본적인 원리가 적용되지 않은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경제 또한 자본주의 사회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해 본다면 이 두 분야는 반면교사로 삼을 주제가 아닐까 싶다. 환경 보호 또한 이론적인 구호에 머물 뿐이고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선진국들의 태도가 개선되지 않는 한 공염불에 불과할 뿐이다.


젠더는 생물학적인 성(性)과 구별되는 사회적인 개념의 성을 말한다. ‘차별의 역사, 불평등의 문화’에서 ‘억압에서 자유’로의 회귀, 성적 소수자의 인권과 휴머니즘으로 향하는 발길에 한 번쯤은 생각할 여지를 가지고 있는 주제다.


<인문학은 밥이다>는 인문학적인 주제가 골고루 담겨있는 사유의 장을 제공하는 ‘생각하는 인문학’을 표방한 책이다. 물론 각 주제별로 포괄적인 담론을 지향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유익한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건질 것은 또 있다. 사유의 스펙트럼을 확장시키는 풍성한 소재의 발견 이외에도 각 장에 부록으로 ‘읽어 볼 책들’이라는 코너에서 소개된 책들이다. 일명 ‘책 속의 책’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책들을 발견하고 독서 목록으로 책갈피 해 놓는다면 앞으로 독서 계획에 중요한 자료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인문학은 밥이다>라는 책의 제목처럼 인문학은 삶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주식(主食)과도 같다. 유한한 인생을 좀 더 풍요롭고 가치 있게 살아가기 위한 방편으로 인문학을 택한다면 그야말로 최고의 선택이라 할 만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인문학 공부를 위한 교재로 활용한다면 훌륭한 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keyword
이전 02화인간이 그리는 무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