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만 보는 바보

안소영 / 보림출판사

by 정작가

<책만 보는 바보>는 저자가 머리말에서 언급한 것처럼 조선 선비 이덕무가 쓴 간서치전(看書痴傳)을 모티프로 한 책이다. 거의 250년 전의 실존 인물을 현대식으로 해석하고 스토리텔링 기법을 도입하여 한 편의 이야기로 만든 이 책은 부제처럼 이덕무와 그의 벗들에 관한 이야기다. 새로운 문물이 도입되고, 사상이 꽃피던 시절.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들로 추앙받고 있는 이들이 주인공과 교유(交遊)하는 과정을 통해 시대 상황과 소명을 인식하고, 조선을 위해 고군분투(孤軍奮鬪)하는 상황을 보면 시대적 한계상황을 절감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의 주인공인 이덕무가 핵심 인물인지 주변 인물들이 주(主)가 되는 것인지 헷갈리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의 제목만 보면 독서에 미친 한 인간에 대한 자서전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책만 보는 바보일지언정 독서에 대한 비법이나 나름의 노하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 책을 집어든 이유가 크긴 하지만 핵심을 제대로 짚지는 못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책을 잘못 고른 것은 아니다. 중간에 읽기를 중단할까 살짝 고민한 적도 있긴 하지만 집중해서 읽다 보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완독 할 수 있었다.


내가 이 책을 고른 목적을 조금이라도 달성하기 위해서는 ‘나는 책만 보는 바보’ 편만 봐도 대략 그 목표에 접근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부분에서는 혼자 책 읽기에 열중하는 책 읽는 바보 이덕무의 일상과 책에 대한 단상(斷想), 책의 종류에 대한 언급이 나름 독서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해 준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책만 읽는 바보에 대한 이미지는 하루 종일 방 안에 앉아 아침, 점심, 저녁으로 상을 옮겨가며 책을 보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각인(刻印) 된다. 비록 비좁은 공간이지만 책과 마음이 오가는 공간은 온 우주를 다 담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신비감에 경도된 이덕무의 모습에서 책 읽는 즐거움에 사로잡힌 독서광인(讀書狂人)으로서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척박한 생활환경에서 책을 읽는데도 그런 상황을 비관하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인 암시를 통해 지속적인 독서에 매진한 위대한 독서가의 의지를 보노라면 고개가 숙연해질 정도다. 그러니 좋은 조건에서도 매번 시간 탓, 공간 탓만 하며 독서에 소홀한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은 비단 독서에 한정되지 않는다. 책을 읽어보면 문학적인 표현과 매끄러운 문체가 부러울 정도로 마음에 와닿는다.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인물들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주인공이 박제가, 유득공, 백동수, 이서구, 연암 박지원, 담헌 홍재용 등 다양한 인물들과 나누는 대화는 에드워드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언급해 이젠 하나의 명언처럼 자리 잡은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이 책에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측면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책과 관련된 용어에 대한 정의다. 여태껏 책을 읽으면서도 이런 단어들을 접한 적은 없었는데 다소 생경한 용어들이지만 앞으로 독서를 하는데 보탬이 될 만한 정보임에는 틀림없다. 일명 구서(九書)라고 하는데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책을 읽는 독서(讀書),

책을 보는 간서(看書),

책을 간직하는 장서(藏書),

책의 내용을 뽑아 옮겨 쓰는 초서(抄書),

책을 바로잡는 교서(校書),

책을 비평하는 평서(平書),

책을 쓰는 저서(著書),

책을 빌리는 차서(借書),

책을 햇볕에 쬐고 바람을 쏘이는 폭서(曝書)


<책만 보는 바보>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독서가로 인정받고 있는 이덕무의 독서에 대한 행적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엿볼 수 있는 책이다. 특히 주인공이 살았던 시절의 역사적인 배경을 토대로 다양한 실학자들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후한 점수를 줄만하다. 비록 책을 고른 목적이 책에 미친 한 인간의 독서 습관을 답습하고 이를 토대로 독서의 변화를 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목표는 빗나갔지만 덤으로 얻은 역사적인 인물들에 대한 만남과 책을 읽으면서 지속적으로 느꼈던 유려한 문체가 주는 기분 좋은 경험은 잊지 못할 기억으로 새겨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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