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지식나눔콘서트
책을 읽으면서 좋은 점 중의 하나로 여겨지는 것 중에 모르는 책을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다면, 그에 못지않게 작가를 알아가는 것 또한 큰 즐거움이라고 할만하다. 아직 다 읽지는 않았지만 『상처받지 않을 권리』라는 책을 쓴 강신주 박사를 알게 된 것 또한 이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측면에서 행운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인간의 삶을 통틀어 가장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주제 중의 하나이다. 강신주 박사가 철학자인 만큼 처음을 철학에 대한 정의로 문을 연다.
철학은 영어로 Philosophy 다. Philosophy라는 단어는 사랑이라는 뜻의 Philos와 지혜라는 뜻의 Sophos로 나뉜다고 한다. 이 두 단어의 합성어가 Philosophy라고 할 때, 철학은 곧 지혜에 대한 사랑, 앎에 대한 사랑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강사인 강신주 박사의 말처럼 이런 정의는 지극히 보편적인 정의다. 하지만 강사는 이런 보편적인 정의를 재해석한다. 앎에 대한 사랑이 철학이 아니라 사랑하면 알게 되는 것이 철학이라고 설파한다. 안다고 사랑할 수는 없지만 사랑하면 알게 된다는 것. 나름 받아들일만한 이론이다.
이 강의의 주제가 사랑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강사가 말하고 있는 사랑의 정의는 무엇일까?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사랑의 세 가지 형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사랑은 누군가를 알려고 한다는 것이다.
둘째, 사랑은 최소한의 폭력을 행사하려는 사람으로 향한다.
셋째, 사랑은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경청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 특히, 두 번째의 정의는 난해한 측면이 있다. 사랑이란 단어에 폭력이라는 단어는 배치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강의에서 언급한 메를로 퐁티라는 프랑스 철학자가 주장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가 주장한 것은 바로 ‘인간은 폭력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은 폭력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폭력을 가할 수밖에 없고, 사랑이라는 것은 그런 폭력의 강도가 가장 약하게 미칠 수 있는 사람에게 향하는 형태로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다. 정리해 보면, 인간을 기본적으로 폭력적인 인간으로 상정한다면, 내가 가진 폭력 중에 가장 소극적인 형태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이 행하는 폭력 중에 가장 큰 폭력은 무엇일까? 강사의 말을 빌자면 그것은 말이라고 한다. 말로 인한 상처를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또한 말로 인해 상처를 주지 않은 사람도 없다. 그만큼 말은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고, 깊은 상처를 남길 수밖에 없는 폭력의 도구가 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결론적으로 강사가 말하는 세 가지 형태의 사랑의 모습은 한 마디로 조심스러움이다. 누군가를 알기 위해서는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되고, 최소한의 폭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마음을 살얼음처럼 대해야 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면 말을 조심스럽게 해야 하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할 줄 아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결국 철학을 한다는 것은 사랑을 안다는 것이고, 사랑을 안다는 것은 상처 주지 않게 배려할 줄 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인문학을 공부하고, 철학을 배우는 이유는 결국 인간을 알기 위함이다. 그렇게 인간을 알려는 이유는 인간을 사랑하기 위함이다. 그런 면에서 철학은 인간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누군가 한 말이 기억난다. 세상에 태어나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이라고. 인류의 보편적인 사랑은 차치하더라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내가 심혈을 기울여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것이 가장 큰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인간의 삶도 궁극적으로 향하는 길은 단 하나의 길, 사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