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명 / 밀리언하우스
<바람의 화원>은 얼마 전 SBS TV에서 절찬리에 방영되었던 동명의 드라마 원작 소설이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은 방영 당시 문근영의 남장이 장안에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연기파 배우 박신양의 출연만으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드라마는 역사 속 인물인 김홍도와 신윤복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조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화가라고 평가해도 좋을 만큼 위대한 두 화가들의 이야기는 그동안 사극의 소재에서 압도적인 우의를 점유하고 있던 궁중비사의 틀을 벗어나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더군다나 남장여자의 모티브는 사극의 지루한 요소를 상쇄할만한 선택이라 할 만하다.
조선 궁중의 화실 도화서. 이를 배경으로 한 두 천재화가 김홍도와 신윤복, 정조 이산으로 이어지는 캐릭터의 현현은 역사 속의 인물을 현실 속에서 맞닥뜨리듯 실감 나게 다가온다. 그림 속의 비밀을 파헤쳐가는 과정 속에서 나타난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묘사와 스릴러를 표방한 듯한 이야기의 전개는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경탄할만한 것은 문체의 간결함이다. 여타 소설에서는 쉽게 느껴보지 못한 흡인력 있는 문체는 활자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될 만큼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마치 수 백 수 천편의 시를 이어놓은 듯한 표현은 소설의 미학을 다시금 느끼게 해 준다. 특히, 좋았던 것은 천재적인 두 화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장을 열어준 시도였다. 지루할만하면 등장하는 한 편의 그림은 그에 대한 묘사의 글과 아울러 새로운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정서가 메말랐던 사실은 스스로도 인정한다. 그랬던 원인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문학 작품에 대한 부족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이렇게 나름대로 이유를 진단해 보는 것은 한 편의 소설 읽기가 버겁다는 사실 때문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당장 필요한 재테크와 자기 계발이 우선순위를 차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이런 것들에만 치중하다 보면 정작 마음의 여유는 누릴 새가 없다. 이럴 때 마음의 안식을 위해서라도 재미있는 소설 한 편에 푹 빠져본다면 잠시 현실을 잊고 조금씩 움터오는 정서의 충격을 느끼는 경험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오래간만에 한 편의 소설을 읽은 셈이 되었다. 그동안 독서목록을 보면 주로 재테크 서적과 자기 계발 서적이 주를 이루었다. 이런 독서 습관에서 벗어나 이야기를 체험하고,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가치를 모색하기 위해 집어든 <바람의 화원>은 그동안의 독서 습관 탓인지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소설이라는 장르의 재미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 소설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