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학 독서

수의 여왕

가와조에 아이 / 청미래

by 정작가

판타지 소설을 읽은 것은 이 책이 아마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웹소설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로맨스와 판타지가 장르소설의 양대 축으로 자리 잡은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정작 관련장르의 작품을 읽은 적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사실 소설자체를 읽은 것 또한 꽤 오랜만의 일이다. 그런데도 판타지를 소설을 읽게 된 것은 수와 관련된 내용을 풀어놓은 책이라는 것에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소설과 수학이라는 다소 이질적인 조합이 어떻게 가능할까 궁금하기도 했고, 요즘 들어 수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이 책을 통해 수학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면 어떨까 하는 기대도 있긴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런 바람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피보나치수열, 페르마의 정리라고 하는 수학 용어 또한 생소하려니와 아무리 책을 읽어봐도 관련 수학적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책을 읽으려니 여간 고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계속 책을 읽었던 것은 수와 관련된 내용을 차치하고 나면 그런대로 판타지 소설의 묘미를 조금은 더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학적인 상식이 겸비되었더라면 작가가 의도했던 대로 온전한 방식의 책 읽기가 가능했을 터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과연 수학적 상식이 부족한 사람은 이 책을 읽지 말아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 비록 이 소설에서 언급되는 수학적인 원리를 이해하고 책을 읽는다면 좋겠지만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책을 읽으면서 충분히 판타지 소설의 재미를 즐길 수는 있다. 수에 대한 거부감이 드는 사람이라면 간헐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수의 행렬에 책을 그냥 덮어버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수가 운명을 지배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출발한 이 소설은 운명 수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나쟈와 요정들이 여왕의 횡포에 맞서 잔혹한 운명을 극복한다는 내용을 담은 판타지물이다. 판타지 소설의 특징인 다소 희화화되고 독특한 캐릭터인 요정들의 출현은 물론 중세 시대의 인물 설정을 통해 장르소설의 전통적인 콘셉트를 이어가고 있다.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책의 도입 부분에는 주요 등장인물들이 그려진 그림들을 볼 수 있다. 요정들의 리더인 멤을 비롯하여 일족인 기멜, 달레트, 카흐, 자인, 주인공인 나쟈와 왕비, 비앙카, 리햐르트 등 주요 인물들의 특징을 소개한 내용을 보면 작품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판타지 소설의 장점은 시공간을 초월한 행위들을 비롯하여 기상천외한 캐릭터들의 출현이 허용된다는 점이다. 그만큼 상상력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이 소설 또한 그런 장르의 특성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더군다나 다소 이질적인 요소인 수를 활용한 이야기 전개방식은 판타지 소설 중에서 신선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장르 소설이 아니라면 구현해 낼 수 없는 독특한 방식의 전개라고 할 수 있겠다.


<수의 여왕>은 판타지 소설의 새로운 원형을 창조한 작품으로 평가할 수도 있지만 창의적 모방을 통한 기존 장르와의 연결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이를테면, 소설의 도입부에 주인공인 나쟈가 암송하는 ‘성스러운 전승’은 구약성서의 창세기를 패러디한 느낌을 갖게 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왕과 거울, 나쟈와 요정들의 캐릭터를 보면 언뜻 동화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중세풍의 공간 또한 판타지 소설의 전형을 볼 수 있다고 하겠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오직 창의적인 모방만이 존재할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큰 반향을 일으켰던 것은 그 누구도 쉽게 생각하지 못했고, 관념적인 ‘수’를 판타지 소설이라는 장르에 과감하게 도입한 저자의 실험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다소 버퍼링을 느끼면서 읽은 책이지만 읽는 이에 따라서는 신선하고 독특한 발상이 매력적으로 와닿을 수도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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