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코체프 감독(1982) / 미국
이전에 한때 람보시리즈가 유행한 적이 있다. 람보는 그야말로 막무가내의 대명사였다. 아주 사소한 일을 가지고도 그저 총탄세례를 남발하기 일쑤다. 영화 <람보>를 보니 왜 그런 우스갯소리가 유행했는지 짐작이 간다. 지금까지 출시된 람보는 패러디시리즈를 포함하여 여러 편이다. 정통적인 람보 영화만 해도 네 편이다. 그중에서 오직 <람보>만 보지 못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람보>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월남전에서 전역한 람보가 친구를 찾기 위해 집을 방문했다가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한 보안관의 시비로 그 동네를 잿더미로 만든다는 이야기다. 영화를 보면 그야말로 속이 후련할 정도로 카타르시스가 해소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야말로 막무가내적인 기질을 발휘하여 동네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장면은 가장 영화적인 장면이라 할만하다.
중요한 것은 람보의 탄생이다. 비이성적인 전쟁이 만들어낸 특급 괴물 람보. 그를 만든 것은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이다. 미국은 곧잘 다른 나라의 내정 간섭에 관여한다. 평화 유지를 핑계로. <람보>에서도 람보는 그저 추레한 차림이라는 이유로 보안관에게 치도곤을 맞는다. 이에 흥분한 람보는 그런 권력에 굴종하지 않고 맞서 싸운다. 그러다 보니 점점 위기는 증폭된다. 보안관의 수도 늘어나고, 진압 병력들도 속속 도착하는 가운데 람보는 숲 속의 동굴에 은신처를 마련하고 이들과 사투를 버린다. 하지만 그의 태도는 당당하다. 전혀 비굴한 기색이 없다. 오히려 조여드는 그들을 압박하기까지 한다. 현실이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영웅 람보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결국 체포되긴 하지만 그건 그가 무력해서라기보다는 그의 분노를 모두 해소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람보>는 공권력에 맞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승부가 될 것 같지 않은 싸움에 뛰어든다. 범인들이라면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여기에 람보라는 캐릭터가 주는 의미가 있다. 역설적으로 소시민의 힘으로 공권력을 대적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이라는 것도 읽어낼 수 있다. <람보>는 그저 한 영웅의 무용담이 아니다. 부당한 권력에도 굴종하지 않고 싸울 수 있는 진정한 시민의 힘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억압이 극대화될 때 한 인간의 보여줄 수 있는 극단의 선택을 통쾌하게 보여준다. 그로 인해 더 이상 시민의 대리권력이 시민 위에 군림하려는 그 역설을 허용해선 안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람보>를 통해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는 진리를 새길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