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

강대규 감독(2009) / 대한민국

by 정작가

여자 재소자들의 감동적인 스토리를 다룬 <하모니>는 그야말로 눈시울을 촉촉하게 적시게 하는 영화이다. 복역 중에 아이를 출산한 주인공이 합창단 공연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서로에게 끈끈한 정을 느끼게 되고, 결국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은 감동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하게 될 것은 이런 감동때문만이 아니다. 범죄자인 사형수로서 사회의 냉대와 지탄을 받지만 - 심지어 가족조차도- 이들 또한 피해자라는 점이다. 물론 이들의 살인자체를 옹호할 수는 없지만 이들의 행위자체가 대부분 과실이라는데 문제점이 있다. 과실로 인해 살인을 저지르고,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이들은 용서받을 수 없는 살인자라는 낙인이 찍혔다는 점이다. 또한 이런 이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만들 수밖에 없는 사형제도의 존속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재판이라는 것은 인간이 인간의 죄를 판단하는 행위다. 굳이 실례를 들지 않더라도 역사적으로 재판을 통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때로는 정권의 영욕을 채우기 위해 죄도 없는 사람들이 간첩 혐의를 받고 사형을 당한 경우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아직도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명예가 회복되지 않은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사형제도의 존속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하모니>를 보면 이들이 살인을 저지른 이면에는 사회의 강자에 대한 힘없는 대항의 결과로 이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어떤 욕망 때문이거나 의도적으로 사람을 해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법망을 피해 가면서 교묘히 약자를 괴롭히는 인간군상들을 종종 보게 된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해야 하지만 실질적으로 법의 적용이 그러리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없다. 그만큼 힘 있는 자들과 힘없는 자들에 대한 법적용은 분명 다르다. 역설적으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명분으로 제정된 법이 약자만을 옭아매는 밧줄로 작용하는 것이 이 시대의 법집행의 현실이다. 결국 약자는 그것이 과실이든 어떤 죄라도 범해서는 안 되는 완전무결한 인간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지나친 비약일까?


<하모니>를 보면서 이들이 재소자라는 신분보다는 '상처받은 인간'으로서 존재감이 마음을 아리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만은 틀림없다. '상처받은 영혼'이 '사회에서 버림받은 영혼'이어야 하는 현실은 가슴을 찡하게 한다. 모정조차도 법규정에 얽매여 거세당하는 현실. 그들이 하나 둘 모여 이루어낸 하모니는 단순한 합창이 아닌 '순수한 영혼'의 울림이었으므로 더욱 눈시울은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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