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왕자

시간의 모래 / 마이클 뉴웰(2010) / 미국

by 정작가

<페르시아 왕자>는 고대의 세계를 정복한 신비의 제국 페르시아를 배경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고대의 단검을 찾기 위해 벌이는 혈투를 그렸다. 마치 타임머신처럼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마력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더군다나 욕망에 눈먼 이들에게 이런 무기는 그야말로 달콤한 유혹일 수밖에 없다. 반면에 이를 지키려는 타미나 공주는 고대의 비검이 세상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을 알기에 이를 적극저지하고 나선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과연 무엇을 할까? 우리는 공상적이지만 이런 생각에 빠져 들 때가 많다. 이는 찰나의 시간이라도 되돌리고 싶었던 후회나 아픔의 기억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마력을 고작 왕위찬탈에 써버리고자 하는 어리석은 인간상이 이 영화에도 여지없이 등장한다. 인간의 욕망은 시간을 되돌려서까지 권력욕을 추구하고자 하는 어리석음에 빠져있다. 더군다나 그것이 가족관계를 무너뜨리는 중대한 오류를 감수하고서도 말이다. 주인공인 다스탄 왕자는 왕이 입양한 아들이다. 친구를 구하려고, 목숨조차 아끼지 않았던 우정을 높이 평가한 왕의 특별한 조처였다. 이는 왕의 말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비록 혈통은 왕족이 아니나, 품성만큼은 왕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이 영화에서의 액션씬은 백미다. 특수효과를 이용한 표창과 화살의 움직임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전투씬이나 성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장면은 고대 페르시아의 신비한 이미지를 더욱 극대화시킨다. 하지만 마치 어디선가 본 듯한 낯익은 느낌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마치 영화 <미라>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등장인물도 전혀 생경하지가 않다. 최근에 본 <울트라 바이올렛>에 비하면 어느 정도의 스토리가 있기는 하지만 그리 주목할만한 스토리텔링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다. 액션씬은 화려하지만 실사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현실감은 떨어진다. 컴퓨터그래픽이 동원되면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할 수 있지만 반면에 실제적인 느낌은 많이 떨어진다. 이 영화에서도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양날의 칼인 셈이다. 또, 전쟁씬이 나오는 영화치고는 치열한 전투신을 볼 수 없다. 내용도 비교적 유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저 게임의 한 장면처럼 고즈넉이 볼만한 그런 영화정도로 족하다.


영화에서는 스토리텔링이 흥행의 성패를 좌우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몰입도는 떨어지는 편이다. 아무래도 고대의 페르시아가 배경이고, 환상적인 소재를 쓰다 보니 현실감이 떨어지고, 시각적인 효과에 치중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 원인이기도 할 것이다. 현란한 그래픽이 난무하고, 특수효과로 볼거리를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이야기에 감동이 없고, 재미가 없다면 그것으로서 영화의 생명은 끝난 것과 다름없다. 이 영화가 크게 부각되지 않는 이유는 다른 영화에 비해 크게 부각될 것이 없었던 요소들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한 번쯤 들어봄직한 소재의 선택, 익숙한 풍경, 개성이 부각되지 않는 캐릭터. 형이상학적인 스토리 등 차별화되지 않은 전략은 그저 밋밋한 고대 영화의 한 편 정도로 치부할 수 있을 정도이다.


관객의 수준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런 관객의 구미에 맞춘 영화를 제작하려면 좀 더 다양한 방식의 접근을 통해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고, 탄탄한 시나리오의 개발을 통해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언뜻 보기에 화려해 보이지만 여운이 남지 않는 이유는 영화에서 주는 메시지가 빈약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물량공세만으로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착각은 버려야 할 것이다. <워낭 소리>가 다큐독립영화라는 장르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관객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감대와 영화가 주는 잔잔한 메시지 때문이 아니었을까? 관객의 마음을 끌지 않는 영화가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불변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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