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준 감독(2009) / 대한민국
물질문명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군중 속의 고독을 쉽게 경험할 수 있다.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인간적인 소외감은 더 커져간다. 여기에 이런 고독한 상태에 처한 사람이 있다. 자살조차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서 외딴섬에 표류하기를 자처한 김씨. 아니 막상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는 상황에서 체념한 것이라는 것이 더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가 머무르고 있는 곳은 무인도이긴 하지만 맞은편에 마천루가 보이는 도심의 섬, 한강의 밤섬이다. 아주 멀지는 않지만 헤엄쳐가기엔 먼 거리인 그곳은 그가 잡을 수 없었던 현실의 또 다른 이정표인지도 모른다. 그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휴대폰은 그의 호소를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무용지물로 변해 버린다. 주변을 지나가는 유람선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지만 정작 그에게 다가오는 것은 손인사뿐이다. 고요한 밤섬에서 그가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는 깨닫게 된다. 자살을 시도할 만큼 절박했던 현실도 추위와 배고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사치에 불과하다는 걸. 정작 더 이상은 잃을 것이 없었던 김씨에게 짜파게티 빈 봉지에 새겨진 희망소비자가격이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었던 것은 희망을 갈구하던 그의 의지에서 탄생한 기적인 것이다. 결국 김씨는 자장면 한 그릇을 먹기 위한 일념으로 혼신의 힘을 기울이게 된다. 그에게 자장면은 단순한 음식이 아닌 희망의 상징으로 변한 것이다.
얼굴에 난 상처 때문에 히키고모리족으로 살아가는 여자가 있다. 그녀의 방은 밤섬 맞은편 고층 마천루에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주업은 미니홈피 관리하기, 취미는 달사진 찍기인 그녀가 밤섬에서 외계인(?) 김씨를 발견하게 된 것은 외계에서 생명체를 발견한 것만큼이나 큰 사건이다. 그런 그녀가 외계인(?)과 소통하기 위해 아파트 방문을 나선다. 달빛조차도 그녀에겐 너무 밝다. 그리고, 소통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밤섬으로 메시지가 담긴 병을 날린다. 고독한 두 인간의 조우는 마치 온라인의 소통처럼 서로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문자를 통하여. 우리는 현실에서 사람을 만나기보다 온라인 매체에서 인맥을 쌓아가는데 익숙해져 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들의 소통은 어쩌면 폐쇄적인 현 세태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간이 어떤 상황에서 절박함을 경험할수록 죽음보다는 삶에 대한 애착이 가능해지는 것은 희망이라는 에너지를 품고 있는 인간의 원초적인 속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고독한 존재인 이들이 발견한 것은 삶에 대한 희망이었다. 이 영화는 약간은 코믹하고, 어설프게 느껴지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절박한 상황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그로 인해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준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리라고 본다. 마천루와 밤섬 사이에 가로 놓인 한강은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일 수도 있고, 해결해야 할 문제일 수도 있다. 결국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 단절 속에서도 소통을 이루어낼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강화시키는 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