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당 / 예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우리 사회에 미친 파장은 크다. 성공이 마치 인생의 가장 큰 목표가 되어버린 우리 사회에서 멈추면 보이는 것들에 주목하라는 메시지는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 책으로 인해 힐링 열풍은 점점 거세어졌고, 상처를 위무하는 책들도 많이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인간관계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다. 그로 인해 상처를 다독이려는 시도로 나름 치유와 관련된 책을 고르던 중 눈에 띈 것이 바로 <머물지 마라 그 아픈 상처에>였다. 일찌감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읽고 감동을 받은 터라 이 책 또한 나름 마음에 위안을 주지 않을까 하여 고른 이유가 크다.
이 책의 제목처럼 아픈 상처에 머물지 않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상처라는 것이 그리 쉽게 아무는 것이 아니다. 그나마 이런 책들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봉합해 보려는 것은 나름 의미 있는 시도라고 평가할 만하다. 이 책의 구성은 간단하다. 마치 일본의 하이쿠를 연상하게 하는 단문과 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이 전부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데도 한 시간 남짓 걸렸을 정도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주는 메시지가 가벼운 것은 아니다. 시의 속성이 그러하듯이 몇 줄 안 되는 단문으로도 가슴이 시릴 정도로 진한 여운을 주는 문장들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것이 가능한 이유는 저자가 스님이라는 이유도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래도 수행을 하는 스님들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인식의 깊이가 보통 사람들의 그것을 능가한다는 것은 쉽게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제재는 다양하다. 상처, 고독, 인간, 언어, 감정 등 생활하면서 우리가 접하게 되는 많은 것들이 사유할 대상이 된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말로 인한 상처와 고독에 대한 것들을 곱씹게 되었는데 요즘 개인적으로 가장 비중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특히 고독에 대해서 피력한 부분은 저자가 스님이라서 그런지 상당히 긍정적인 느낌이 강하다. 아무래도 수행하는 분이 수도를 하면서 몸소 체험한 것이라 공감이 갈 수밖에 없다. 요즘 베스트셀러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사이토 다카시의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이라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 또한 이런 고독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라면 우리가 막연하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고독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겨 볼 가치는 충분하다.
<머물지 마라 그 아픈 상처에>는 마음의 치유를 위한 책이지만 그림을 감상하기 위한 텍스트로도 손색이 없다. 이 책의 저자인 스님 허허당의 그림 솜씨 또한 일품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을 신비로운 예술로, 삶이 위대한 예술임을 역설하고 있는 스님의 관점에서 보면 예술은 분명 스님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스님의 그림을 보면 거침없는 필치에 어우러지는 수많은 대중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중생을 구제해야 한다는 불교의 고유한 가치를 드러내기 위한 방편인지는 모르지만 여타 그림과는 색다르게 신선한 느낌을 준다. 마음이 울적하고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싶을 때가 있다면 이 책 아무 곳이라도 펼쳐놓고 마음에 드는 시구와 그림을 감상한다면 나름 힐링의 효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