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현실이 소설보다 더 리얼하고, 믿기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내겐 1987년의 경험이 그랬다. 요즘 말로 소위 중2병이라도 걸렸을법한 시절이 온통 폭력으로 얼룩져버렸던 그 기억은 아직도 심연 속에 박제되어 있다. 몇 년 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넷플릭스의 <더 글로리>속 또 다른 주인공은 지금도 현실 속 어디에선가 절망의 어둠 속에서 그 아픔을 재현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폭력은 대물림된다.
1987년 제11회 이상문학상 대상작이 이문열 작가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는 사실은 뒤늦게 알게 되었다.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영화화되어 홍경인을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작가는 미처 알지 못했을 터이지만 상상력으로 엄석대를 탄생시켰고, 실제로 현실 속에서는 그런 엄석대가 우리들에게 마구잡이로 폭력을 행사했다. 공교롭게도 그것이 1986년과 1987년의 일이다. 정치, 사회적으로 민주화 열풍이 불었던 그때. 시골의 한 중학교에서는 독재소공화국이 실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교실 속 엄석대의 전횡은 1년 반 가량 이어졌고, 교무실 또한 그 사실을 몰랐다. 그동안 앳된 중2들의 운명은 바람 앞에 촛불처럼 위태로웠고, 성장기 사춘기 소년들의 가슴팍은 폭력으로 시퍼렇게 멍이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굴에 솜털이 났을까 말까 하는 앳된 중2의 아이들이 매일같이 학교에서 가슴팍을 얻어맞고, 쉬는 시간에는 말 한마디 못하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던 공포분위기에서 살았던,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던 시절이었다. 요즘 같으면 중2병이니 뭐니 하며 부모에게 반항하고, 투정이나 부려야 할 시기에 말이다. 그런 시기에 우리는 매일 맞아야 하는 가슴팍을 단련시키기 위해 서로의 작은 가슴을 때려주며 동지애를 쌓아가고 있었다. 이런 폭력의 흐름을 멈춘 것은 뜻밖에도 작은 체구를 가진 반 친구의 희생이 결정적이었다. 가슴팍을 얻어맞다 넘어지면서 책상에 턱이 부딪히는 부상을 당하고,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면서 폭력의 실체가 까발려지게 된 것이다. 그 친구는 턱에 꿰맨 바늘 자국을 훈장처럼 달고 살 수밖에 없었다. 학생과로 끌려간 엄석대는 죽도록 맞았다. 폭력은 폭력을 낳는 법이다.
영화 속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고발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엄석대와 일당들의 횡포는 피해자들의 증언으로 백일하에 드러났다. 부상당한 친구는 그렇게 우리의 구세주였고, 영웅이 되었다. 폭력의 경험은 중학교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 기숙사 생활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신입생이라 선배들에게 가슴팍을 맞는 일이 다반사였다. 중학교 때 1년 반 동안 맞는 것에 단련되어서 그런지 큰 고통은 없었다. 고통도 반복되면 무뎌진다고 했던가? 당시 폭력은 일상을 버티기 위한 통과의례에 불과했다. 막 피어나던 꽃봉오리 같았던 시절. 파시즘의 공포를 경험했던 그때 이후 다시 수십 년이 지났다. 폭력은 대물림된다고 했던가? 지난겨울, 매스컴에서 다시 환생한 엄석대가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