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by 정작가


십수 년 전, 하버드대학교 교수인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서점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다. 당시 EBS에서 방영되었던 마이클 샌덜 교수의 강의도 큰 호평을 받았다. 이런 신드롬에 가까운 현상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이었까?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정의라는 것이 부족한 이유가 아닐까? 여론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 중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자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가진 자들의 사회적인 책임을 강조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은 차치하더라도 부자들 대부분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는 것이 아닐 거라는 인식은 그만큼 고소득층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요즘은 능력의 시대라는 말을 많이 한다. 능력만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건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시대라고까지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현실적으로는 지극히 극소수에 해당되는 사례임을 모르는 사람은 적지 않다. 혈연, 학연, 지연으로 얽힌 사회에서 단순히 능력만 가지고 세파의 거친 파고를 헤쳐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고, 이미 도를 넘어선 사교육 열풍은 그런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회 현상이다. 이전 EBS 강의에서 마이클 샌델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날 강의의 주제는 존 롤즈의 <정의론>을 다루는 내용이었는데 과연 우리는 평등한 사회에서 선의의 경쟁을 통해 이 자리에 설 수 있었겠는가 하는 물음이었다. 미국의 명문대 재학생 중에 사회 소외계층의 자녀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3%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통계수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공정사회라는 말이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과연 공정한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이런 물음들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누구나 동일한 출발점에서 출발한다손 치더라도 각자의 역량에 따라 차이는 벌어지게 된다. 하물며 교육, 경제, 정치, 문화, 예술분야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소위 혜택을 받는 부류가 출현하는 것은 그들이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기보다는 좀 더 유리한 조건과 환경에서 태어난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 존 롤즈가 주장하는 정의론에 대한 인식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역할모델은 분명하게 단정 지어질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분배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개념 또한 이런 것과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국 사회에서 부자들의 대명사로 알려진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의 자선 사업이 어찌 보면 당연한 행위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막대한 부와 명예를 획득한 이들의 행적이 단순히 노력만으로는 그 결과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그런 부의 축적이 사회적으로 연관된 수많은 변인들에 의한 것일지라도 국가가 이를 강제하여 부를 배분한다는 것 또한 정의에 어긋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미국 정가에서는 부자 감세라는 정책을 통해 부의 재분배, 소득의 균형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는 앞서 언급한 것들과는 모순적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자발성이라는 측면과 한계를 설정한다면 소수 특권층이든 중산층이든 사회 소외계층이든 어느 정도의 완충지대는 존재하고, 정의라는 명제에서 어떤 부류에서든 반기를 드는 일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결국 정의란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치를 설정하고 맞추어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이런 사회구조라면 부자에 대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기보다는 그들을 그 자체로서 존중할 수 있고, 비록 사회적인 혜택에 소외된 부류라 할지라도 그들의 사회 공헌에 대한 가치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사회 불평등이라는 인식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고, 정의와 공정이라는 구호가 결코 공허한 메아리처럼 인식되는 일 또한 사라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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