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2005) / 대한민국

by 정작가

이준기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영화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당시 몇 안되는 천만관객동원 영화이기도 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남사당패는 당시 천대받던 광대집단이었다. 그런 그들이 한양의 큰 춤판에서 이름을 날리고, 대궐로 들어가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할수도 없는 파격적인 일이었다. 폭군인 연산군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급기야 공길(이준기 분)은 왕의 애첩인 녹수의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로서 득세하고, 이들의 춤판으로 조정의 대신들조차 위기로 몰리게 된다. 한 천민광대집단이 어떻게 이런 큰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일까? 그들에게 부여된 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최근 새로운 권력의 강자로 부상하고 있는 언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왕은 눈은 있으되 보지 못하고, 귀가 있으되 듣지 못했던 허수아비와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조정 대신들과 궁중의 암투로 진실은 호도되고, 권력투쟁의 장에서 어찌보면 왕은 외로운 존재였으리라. 그런 왕에게 눈과 귀의 역할을 한 것이 다름아닌 남사당패였던 것이다. 권력이 눈이 멀어 전횡을 일삼는 탐관오리와 조정대신들의 실체를 그들은 실감나는 연기로 재연하게 되고, 당사자들은 그런 언론의 역할에 충실했던 남사당패들이 눈엣가시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음모에 능한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그들을 몰아내려고 할테고 …….남사당패의 활약은 당시 고초를 겪었던 민중들의 눈으로 보았을때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가뭄에 단비와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많은 언론들이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속한 조직의 이해관계 혹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 펜을 권력처럼 휘두르는 전횡을 보여주는 모습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지금의 언론이 이런 남사당패와 같은 역할로 국민을 대변한다면 지금과 같은 불신의 늪에서 벗어나 국민의 조력자로서의 위상에 걸맞는 대우를 받을 수 있을텐데.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지나친 기우는 아닐 것이다. 현 시대에도 이런 남사당패와 같이 국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집단이 존재한다면 좀더 민주적이고 발전적인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소수 언론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주류 언론의 행태를 보면 갈 길이 먼 느낌이다. 영화의 흥행이유도 이런 현실에 잇닿아 있지 않을까?


양반사회에서 천민의 광대신분으로 권력을 속살을 드러내고, 권력을 가진 자들의 위협이 대상이 된 것은 관객들에게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는 대리만족의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권력을 향한 투쟁은 한때 광화문 광장에서 모였던 국민들의 촛불시위의 성격과 다르지 않다. 결국 영화에서처럼 그들도 철저한 응징의 희생양이 되는 것처럼 우리도 과거 아픈 경험을 했던 역사적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영화는 현실을 투영한다. <왕의 남자>가 이런 선풍적인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당대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여전히 권력자들은 자기 밥에만 눈독을 들이고, 국민들의 고통과 아픔은 외면하려한다. 이 영화를 통해 이런 현실인식에 대한 냉철한 판단력과 시선을 기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좋겠다.

keyword
이전 16화7인의 사무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