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인의 사무라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1954) / 일본

by 정작가


<7인의 사무라이>는 명작으로 일컬어지는 영화이면서 진작 보지 못한 작품이다. 일본 영화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고전 영화의 반열에 오른 이유 또한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다.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과연 명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1950년대 제작된 영화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탄탄한 스토리와 구성, 배우들의 열연이 흥미를 배가시킨다.


<7인의 사무라이>를 보기 이전에는 그저 지레짐작으로 7명의 사무라이들의 무용담이겠거니 싶었다. 아무래도 사무라이를 소재로 한 영화인 만큼 잔인함과 액션 신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을까 하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오히려 사무라이들의 훈훈한 인간미가 넘치는 장면은 요즘 판치는 영화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휴머니즘의 극치를 보여준다.


사무라이들은 그저 끼니만 해결해 주는 조건으로 어느 산골 마을 사람들에게 고용된다. 당시는 16세기. 백성들은 세금과 부역, 도적들의 수탈로 삶의 곤궁함에서 벗어날 수 없어 빈한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지속되는 도적들의 행패로 분노가 극에 달한 마을 주민들은 이번만큼은 도적들에 항거하여 싸우기로 결정을 한다. 하지만 특출난 싸움꾼 하나 없는 마을에서는 사무라이를 고용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도적 떼들의 수는 사십 명을 육박하기에 한두 명의 사무라이로는 대적할 수도 없다. 적어도 예닐곱 명의 사무라이가 필요한 상황이고, 각지에서 모인 사무라이들은 드디어 마을로 입성을 하는데...


이 영화의 시대적인 배경은 16세기 일본이다. 이때의 사무라이는 무사계급이라 평민이었던 마을 주민들보다는 신분적으로 우월한 집단이다. 그런 상황에서 사무라이들이 쌀 한 줌에 보디가드를 자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곤궁한 사회의 궁핍한 현실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영화 곳곳에서 드러나는 시대적인 상황은 말 그대로 궁핍함 그 자체이다. 이런 상황에서 출몰하는 도적들의 약탈은 그야말로 마을 주민들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조차도 빼앗아 버리는 치명적인 도발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살인마저 저지르는 극악무도한 집단이기에 포로로 잡혀온 도적조차 분노에 찬 주민들에게는 복수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선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마을 주민들의 태도이다. 이전에는 도적들의 말발굽 소리만 듣고도 우왕좌왕하며 숨죽였던 이들이 죽창으로 무장을 하고 방어를 넘어서 적극적인 공격에 가담하게 되는 상황이다. 물론 이는 사무라이들의 지도에 따른 것이었지만 자신의 마을을 손수 지킬 수 있다는 충천한 자신감은 결국 도적들을 한 명도 남김없이 섬멸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정작 자신들이 요청한 사무라이들의 등장조차도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던 유약한 모습에서 과감하게 도적들에 항거하는 능동적인 모습으로 변화. 이는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는 속담처럼 밟히고 밟힌 민중들의 분노가 어떤 계기로 인해 손쉽게 표출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변화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한 사무라이가 말한다. 이번 싸움 또한 사무라이의 패배라고 - 사무라이는 7명 중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는 당시 일본의 계급사회에서 사무라이의 위치가 추락하는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한다.


<7인의 사무라이>는 비록 흑백영화이기는 하지만 리얼한 액션 장면, 16세기의 피폐한 농촌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재연하며 액션 영화의 신기원을 이룬 작품이다. 후에 서부 영화의 교본이 될 만큼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니 영화사에 길이 남을 역작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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