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2016) / 대한민국
<부산행>은 한국 영화에서 흔치 않은 좀비를 소재로 한 영화이지만 흥행성과 작품성 모두 뛰어나 천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이다. 외국영화에서 좀비는 타도해야 될 대상에 머물지만 <부산행>에서 좀비는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널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에 휩쓸리는 존재로 그려진다.
누구라도 좀비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좀비의 습격을 받아 좀비가 된다면 과연 어떤 심정일까?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확진자가 된다면 또 어떤 기분이 들까? 이런 의문을 풀어주는 장면이 있다.
처음으로 KTX에 좀비가 되어 뛰어든 가출 소녀가 화장실에서 주저앉아 계속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며 현실을 부정하는 듯한 뉘앙스를 띄고, 신에게 호소하는 듯한 말을 중얼거리는 대목이다. 인간에서 좀비가 되어가는 과정을 느끼며 그녀가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런 절대자에 대한 기대 외엔 없었을 것이다.
좀비는 누구라도 될 수 있다. 누구라도 코로나19 환자가 될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영화 속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모두들 그런 현실을 부정한다. 적어도 자기에겐 그런 일이 닥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설사 그런 일이 닥친다고 할지라도 애써 그런 현실을 외면하려 한다. 할 수 있다면 타인을 희생해서라도 그런 위기를 넘기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현실에도 그런 사람들은 존재한다. 단지 그런 속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살아갈 뿐이다. 이 영화에서는 용석 역의 김의성이 그런 인물이다.
<부산행>에서는 위기 상황에서 과연 인간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변하는 인물은 수안의 아버지로 등장하는 석우 역의 공유다. 냉철한 인간형인 석우는 어떤 식으로든 실적만 올리려는 펀드매니저이자 수안에게는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며, 자식에게 같은 선물을 사다 주는 무관심한 아빠로 그려지기도 한다. 기차 안에서는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을 두고도 훈계하는 모습을 보인다. 중간 역에서 남들과는 달리 샛길로 빠지려는 기회주의자적인 속성을 엿보이기도 하지만 상화 역의 마동석 등 주변 인물들과 딸을 구출하게 된 것을 계기로 적극적으로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온몸을 바치는 인물로 변하게 된다. 주인공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전혀 새로운 인물로 반전하는 사례는 영화 <밀정>에서 이정출 역의 송강호를 들 수 있다. 이처럼 영화에서 변화되어 가는 캐릭터를 찾아가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이 영화에서 가장 얄미운 캐릭터는 고속버스 회사 대표인 용석이다. 위기 상황에서 혼자만 살겠다고 여러 명의 사람들을 좀비로 전락시키지만 정작 본인도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현실에서는 오히려 이런 캐릭터가 많다. 오히려 마동석과 공유 같은 캐릭터는 영웅에 가깝다. 많은 관객들이 이들의 행동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 속에서 이런 인물들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관객을 속이는 반전 인물로는 노숙자 역을 맡은 최귀화를 들 수 있다. 그는 처음에 가출 소녀인 심은경과 혼돈되는 캐릭터로 관객들에게 혼란을 주지만 오히려 위기 상황에서는 자기를 희생하는 캐릭터가 되기도 한다. <부산행>에서는 이렇듯 각기 주어진 역할에서 최선을 다한 배우들의 연기로 개성 있는 캐릭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상화 역의 마동석은 성경 역의 정유미의 남편 역을 맛깔스러운 대화와 약방의 감초 같은 연기로 흥행성에 지대한 공헌을 한 흔적이 역력하다.
좀비가 출현하는 영화답게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좀비들의 역동성은 여타 외국 영화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다. 가출 소녀 역을 연기한 심은경의 꺾기 신공은 말 그대로 예술적인 경지를 구가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의 종반 부분에서 기차를 타고 도망가는 세 명을 쫓아가는 집단 좀비들의 추격신이다. CG를 활용한 느낌이 들지만 실사와 다름없는 연출은 이 작품에서 가장 명장면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생각이 든다. <부산행>은 전반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영화다. 개성적인 캐릭터들의 출연, 박진감 넘치는 전개, 좀비들의 자연스러운 연기, 군더더기 없는 영상 등은 이 영화가 어째서 천만 관객을 돌파했는지 가늠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