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흔, 박현찬 / 예담
글쓰기에 대한 다양한 교본이 있지만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처럼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쓴 책을 만날 일은 드물었다. 특히, 책을 읽으면서도 글을 쓰는 방법보다 내용에 몰입하게 되었던 것은 그만큼 소설로서도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역사적인 사실에 기초하여 소설 형식으로 기술한 책이다. 이는 역사적인 사실과 문학적인 허구에 대한 양면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또한 연암 박지원이 살았던 시대적인 배경과 그 시대에 볼 수 있었던 사료를 만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다른 책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체험의 장(場)을 경험할 수 있다.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는 연암 박지원의 아들인 종채가 아버지로부터 사사한 글쓰기에 대한 비법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기술한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적인 내용의 흐름보다는 진액이라고 할 수 있는 글쓰기 비법에 대해 집중하여 접근하는 방식이 주효할 것이라고 본다. 그런 면에서 각 장에 위치한 글쓰기 법칙을 숙지한다면 박지원식의 글쓰기 방법은 어떤 것인지 심층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정밀(精密)하게 독서하라
하루에 경서 한 장과 『강목』 한 단 씻을 읽으라고 말한 것은 가르칠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이는 글쓰기의 시작이 천천히, 꼼꼼하게 읽는 것임을 알려 주었던 것이다(p.72)
글쓰기의 시작은 독서, 특히 정밀한 독서라고 적시(摘示) 한 것은 그만큼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독서가 글쓰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밀한 독서는 저자의 생각을 헤아릴 수 있는 단초가 된다. 이는 사유를 통한 책 읽기의 작업을 통해 향상된 글쓰기를 지향하라는 연암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관찰(觀察)하고 통찰(通察)하라
관찰과 통찰이 글을 쓰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사물에 대한 새로운 통찰 없이는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없다(p.116)
글을 쓰는 이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찰이다. 박웅현의 <책의 도끼다>에서도 세밀한 관찰이 주는 의미를 되새겨 보면 글을 쓰는 데 있어서 관찰은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네이버 국어사전을 보면 관찰은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봄’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이런 정의는 통찰이 주는 의미가 사물의 새로운 속성을 파헤치려는 노력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작가가 부여하는 의미의 창조는 글 자체의 생명력과도 직결되는 만큼 통찰로 인해 얻어지는 가치는 글쓰기의 전범(典範)으로 삼을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원칙을 따르되 적절(適切)하게 변통(變通)하라. 의중(意中)을 정확히 전달(傳達)하라.
‘적절하게 변통하라’는 부분에서는 증자의 제자인 공명선이 책을 읽는 대신 스승의 행동을 보고 배우는 길을 택한 것과 한신이 무턱대고 병법을 따르는 대신 병법의 참의미를 읽어낸 사례를 통해 창조적 변통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글쓰기 또한 적절한 변통을 통해 자기만의 문체를 확립하고 창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라는 일침인 것이다.
‘의중을 정확히 전달하라’는 부분에서는 ‘쓰는 사람이 자신의 의중을 읽는 사람에게 정확히 전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있다’고 기술한 것처럼 저자의 의지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일이 글쓰기의 핵심적인 요체(要諦)라고 할 수 있다.
관점과 관점 사이를 꿰뚫는 ‘사이’의 통합적(統合的) 관점(觀點)을 만들라.
글을 쓸 때는 사물의 다양한 측면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각각의 측면에는 그 나름의 온당한 이유가 있다. …… 여러 측면들을 늘어놓았으면 이제 그것들 사이를 꿰뚫는 새 관점을 만들어야 한다(p.168)
다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관점과 관점 사이를 꿰뚫는 통합적인 관점을 만들라는 것은 관점을 조망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관점의 조망은 획일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다양하게 사물이나 이론을 바라보는 통합적인 인식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이를 통해 관점의 통합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라는 의지를 강화시키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이 부분만 숙지(熟知)한다고 해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을 충분할 것이다.
실전에 적용할 수 있는 글쓰기 수칙 11가지
1. 명확한 주제 의식을 가져라
2. 제목의 의도를 파악하라
3. 단락 간 일관된 논리를 유지하라
4. 인과관계에 유의하라.
5. 시작과 마무리를 잘하라
6. 사례를 적절히 인용하라.
7. 운율과 표현을 활용하여 흥미를 더하라.
8. 참신한 비유를 사용하라.
9. 반전의 묘미를 살려라.
10. 함축의 묘미를 살려라.
11. 여운을 남겨라.
각 구분은 전체 틀, 구성 방식, 세부 표현에 필요한 수칙들이다.
사마천의 분발심(奮發心)을 잊지 말라.
여러 글쓰기 법칙 중에서도 이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글에 힘을 쏟지 않고 다른 것에 기대는 순간 글은 그 즉시 가치를 잃고 만다(p.282)
사마천이 수치스러운 궁형(宮刑)을 다하고도 자결하지 않고 아버지의 유업을 받들어《사기》라는 역사서를 편찬하게 된 역사적인 사실만 보더라도 분발심(奮發心)이라는 것이 중요한 덕목인지 유추할 수 있다. 역사의 고전으로 길이 남을 《사기》를 편찬한 사마천의 행적을 통해 분발심으로 글을 쓰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다시금 되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 된 것 같다.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는 이야기 형식을 통해 연암 박지원의 사상과 가치는 물론 글쓰기의 전범(典範)을 제시한 교본으로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알찬 텍스트라고 할 만하다. 유려한 문체를 통해 한 편의 소설을 읽는 즐거움과 글쓰기에 대한 알찬 정보를 제공한다는 면에서도 이 책은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책임에는 틀림없다. 책의 디자인에도 세심하게 주위를 기울인 것은 삽화(揷畵)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07 문화관광부에서도 교양 도서로 선정될 만큼 우수한 책으로 인정받은 텍스트이니 만큼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