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기회주의자가 되다

키신저

by 정작가


기회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우리 정치사에서 숱하게 보아오던 일이라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이른바 철새정치인들은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매도당하기 일쑤다. 이런 풍토에서 기회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나 다름없다. 키신저는 우리와는 정치 상황이 많이 다른 미국에서 이런 방식으로 자신이 원하던 바를 얻을 수 있었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닉슨과 험프리진영에 내부의 정보를 제공한 결과였다. 그에겐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상관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의도한대로 목적을 달성하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에 그런 전략을 구사했던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이 된 닉슨과도 적절한 거리를 두어 후에 포드 대통령으로 정권이 바뀌었을 때에도 관직에 임명되었다. 이는 다양한 경우의 수에 대비해 철저하게 운신의 폭을 조절한 키신저의 현명한 판단에 의한 것이다. 물론 이런 키신저의 행태가 비난을 면치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었던 점에선 그의 처세에 대해 감히 비난의 화살만을 날릴 수는 없다.


가치관은 개개인마다 다르다.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는 주관적인 성향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정치라는 비정한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키신저처럼 기회주의자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성향으로 입지전적인 인물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가 비난 받지 않았던 것은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준비한 철저한 전략에 기인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기회주의자가 되라는 것은 일신의 안위를 위해 비겁한 수단을 동원하고, 인간적인 도리를 취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어떤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갈 때 때론 어떤 것이 자신에게 진정한 이득이 될 수 있는지 따져보라는 것이다. 결국 키신저는 그의 의지대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고, 남들이 낙마의 고배를 마시는 사이 정치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객으로 자리잡았던 것이다. 이 일화는 비단 정치적인 분야에만 한정된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예기치않게 갈등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 상황에서 진정으로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흑과 백을 선택하는 이분법적인 선택이 아니라 갈등의 상황을 조율할 수 있는 중도의 위치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포지션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키신저처럼 양분된 도움의 전략을 통해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그로 인해 적을 만들지 않는다면 그런 전략은 아주 우수한 전략으로 인구에 회자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는 변화무쌍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큰 교훈으로 다가온다.


변화의 속성과 지속적인 것은 반대의 개념이다. 키신저의 일화를 인간적인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약간 석연치 않는 구석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변화하는 시대에 대처하는 자세라는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자신에게 맞는 가치를 취할 수 있는 전략이 될 수도 있다. 기회주의가 되자. 이는 단순히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이자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 속에 품은 진정한 가치를 찾아낼 수 있는 여지를 남겨준다. 각자 처한 상황에서 어떤 것이 과연 자신에게 유리한 것인지는 스스로 판단할 몫이기 때문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0만 달러로 100만 달러짜리 호텔을 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