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재
푸른 곰팡이 / 이문재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 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떄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기다림의 미학을 고대한다는 것은 통신기기의 발달로 고려적 일이 되어버렸다. 손수 편지를 쓰고 부치는 시간, 다시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기억이었음엔 틀림없지만 세월에 흐름에 따라 그런 기억도 빛바래진 느낌이다.
<푸른 곰팡이>에서 시인은 이런 시간들을 ‘발효’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 발효라는 것이 무엇인가? 시간의 흐름을 요하는 미생물의 작용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미생물의 작용조차 시간이라는 흐름의 강을 건너는데 고등 동물이라는 인간의 감정이야 오죽할까? 그러기에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다’고 시인은 토로하는 것이 아닌지. 아름다운 산책의 기억이 희미해지는 세태에서 우체통을 경고의 메시지로 읽어내는 시인의 냉철한 현실 인식에 공감의 제스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