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한 밤. 평야에서 불을 피우고 있는 세자와 무영, 물가에서 핏빛으로 엉겨있는 뭔가를 씻고 있는 서비.
무영이 먼저 말을 건넨다.
“저하 잘못이 아닙니다. 저하는 그들을 살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세자를 잡으러 지율헌에 들이닥친 의금부 관군들에게 투항하지 않았던 이유로 많은 이들이 죽음을 맞이했던 상황에 대해 세자가 죄책감을 토로하는 장면이다.
“힘없는 백성들을 버린 자들과는 다르고 싶었다.”
이에 서비가 말한다.
“다르셨습니다. 제 눈엔 그리 보였습니다.”
드라마에서 때론 코믹적인 요소를 부각하는 것이 양념처럼 극을 맛깔나게 한다. 이번 회차에서는 부사가 그런 역할을 맡았다. 서비가 잠시 약초를 캐러 간 사이 목도 했던 괴물은 거지 몰골을 한 부사였다. 그의 우스꽝스러운 등장은 실소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드라마 속의 상황을 이끌어가는 데 중요한 정보를 던져주기도 한다. 이런 인물의 등장은 극 중에서 조력자의 역할조차도 수행하지 않지만 극의 흐름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해 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보면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국, 거지 몰골에 되어 나타난 부사를 통해 역병의 확산을 막은 마지노선이 상주임을 직관하게 된 세자는 즉시 일행과 함께 상주로 떠나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인물의 등장은 종종 극의 국면전환을 이끄는 데 활용되기도 한다. 지난 회차에서는 안현 대감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등장을 예고하는 장면이 그를 언급하는 대사에서 복선처럼 나타났다. 이런 장치는 시청자로 하여금 호기심을 유발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시장통에서 안현대감의 등장에 동리의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맞이하는 장면은 그가 이 지역에서 꽤나 영향력 있는 인물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비중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는 장면은 영신이 안현대감의 배려로 세자 일행과 숙식을 제공받고 있던 와중에 그의 집을 빠져나와 주변을 둘러보는 데서 더욱 구체화된다. 영신이 지나던 길에 있던 운포늪 전투 충렬비에서는 ‘경상 관찰사 안현이 오백의 관군으로 삼만 왜군을 무찌른 공을 치하하며’라고 쓰여있다.
안현대감은 초막살이하는 장면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 장면에서 안현의 최측근인 덕성은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경상 땅에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동래에 역병이 돌기 시작했는데 병자들의 모습이 죽어도 죽지 않는 괴물이라고 합니다.”
워낙 극에서는 어떤 존재에 대해 이처럼 직접 설명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영화나 드라마는 영상으로 설명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역병에 걸린 괴물, 즉 좀비에 대해 직접 언급했던 것은 아마도 <킹덤>이 10회가 넘어가는 시리즈물이라서가 아닐까, 유추해 본다. 처음부터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좀비의 속성을 알겠지만, 중간에 시청한 사람들은 그 괴물의 존재를 쉽게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또 한 편으로는 막연히 알고 있던 좀비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언급함으로써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 존재의 가치를 명확하게 규정하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한편, 화전민의 마을에 당도한 세자 일행은 난데없이 잔치를 벌이며 먹고 있는 이들을 발견한다. 어려운 상황에서 포식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의심의 눈초리 바라보게 된 세자 일행은 곧 이들이 배에서 얻은 노획물로 이와 같은 일들을 벌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안현대감의 일행은 강가에서 좌초당한 배를 발견하게 되고 그곳을 수색하게 된다. 여기저기 핏빛이 보이지만 정작 시체 하나 없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그들의 여정은 결국 새로운 상황과 맞닥뜨릴 수 있는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세자 일행은 화전민들을 부추겨 그들이 묻은 시체가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간다. 화전민들은 어차피 자기들이 죽을 목숨인 줄 알고 반기를 들려고 하지만 마침 역병에 걸린 좀비들이 살아나 자 그들과 함께 생사를 건 사투를 벌인다. 이때 갑자기 하늘에서 날아온 불화살은 세자 일행을 위기에서 구해준다. 바로 이들은 안현 대감의 가솔들이다.
안현대감의 가솔들과 더불어 세자 일행이 좀비들과의 일전을 수행한 후 안현과 세자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이어 안현대감과 세자의 어릴 적 기억을 회상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 장면에서도 먼발치에서 조학주가 보인다. 조학주와 안현이 대척점에 서 있다는 설정은 이로써 명확하게 드러난다. 회상 장면이 끝난 후, 갈대밭이 불타는 전장에서 안현이 세자에게 무릎 꿇고 알현하는 장면은 스승과 주군으로서 그들의 관계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적 동질체임을 드러내준다.
<킹덤>에서는 좀비들과의 결투신이 많기 때문에 과도하게 자극적인 영상에 노출될 때가 많다. 그것이 때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줄 때도 있지만, 지나치게 되면 자극에 둔감해질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설정상 <킹덤>의 좀비들은 목이 잘려야 다시는 살아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액션 신을 유발할 수밖에 없는 설정은 이 드라마가 왜 19금이라는 판정을 받고 방심위를 통과했는지 알 수 있다. 이번 회차에서도 좀비들과의 격투신은 치열하게 전개된다.
드라마 속 장면을 보면 예기치 않게 역사적 사건과 오버랩되는 장면이 있다. 이번 회차에서는 조학주가 감옥에 갇힌 수인들에게 인육을 먹이고, 그 경과를 지켜보는 신이 있다. 조학주와 그의 수하들은 감옥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역병이 어떻게 전염되고 전파되는지 목도하게 된다. 마치 청일전쟁 직후 일제가 만주국이라는 괴뢰국을 세우고 731부대를 운영하며 자행되었던 만행이 떠오르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드라마는 다양한 문학, 역사, 철학적 토대 위에서 자라고 발전한다. 드라마 속에 숨겨진 의미를 발견해 내는 과정은 그 자체로서 잊혀졌던 문화와 역사를 읽는 작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극의 말미에서는 조학주가 중전을 수렴청정의 도구로 만들고, 경상 땅에 일어난 역병을 구실삼아 중앙군을 파견하여 혼란한 민중을 다스릴 것이라 선포하는 대목이 있다. 위기는 권력자에게 권한을 대폭 강화해 주는 계기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