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새소리가 들리고,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든 나무들의 반영이 보이는 연못. 그런 풍경이 자리한 정자 위 대화 장면은 역설적으로 비극적인 사건의 흐름을 이끄는 단초가 된다.
“이 연못 안에 시신이 몇 구 있을 것 같으냐? 이 안에 시신이 몇 구가 있건 몇십 구가 있건, 그 누구도 내게 아무 말도 못 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권력이다.”
“그 권력으로 아버님을 잘 지켜 드리겠습니다.”
“니 손에 그 권력을 쥐어준 사람은 나다. 그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 사람도 나지. 내 명이 있을 때까지 절대 관문을 열지 말거라.”
조학주와 중전의 대화 속에서 포착되는 이 장면은 그들의 서열 관계를 명징하게 드러낸다. 여기서 조학주는 카메라의 포커스에서 벗어난다. 흐릿해진 위치에서 바로 뒤에서 째려보던 중전의 표정이 바뀐다. 이는 곧, 자기 위치를 알고 현실에서 체념한다는 것을 표현한 상징적인 장면이다. 중전의 표정에서 나타나는 미묘한 감정변화를 관찰하는 것도 감상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대사에서 말한 것처럼, 조학주는 권력을 입에 오르내린다. 이 장면은 흡사 시청자의 관점은 아랑곳없이 상황을 설명하려는 이미지가 짙게 풍긴다. 실상 권력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기’를 통해 권력의 속성과 비정함을 드러내는 것이 좋겠다. 이런 기법이 드라마에서 더 자연스러운 표현 방식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무영이 세자에게 말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핵심은 눈치빠른 시청자는 이미 무영을 의식했다는 사실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측근의 배반' 모티프는 종종 배반자의 낙인찍기로 이어져 종래 가졌던 이미지를 전복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유심히 무영의 표정을 읽으며 속 마음을 되뇌일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시청자가 스토리에 몰입해 교감하고 있다는 메시지다.
“저하, 누구도 믿을 수 없사옵니다. 빨리 여길 뜨셔야 합니다.”
세자가 무영을 바라보는 눈빛이 이전과는 달리 싸늘하다. 이때, 밖에서 내금위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세자를 체포하러 온 이들의 등장은 다시금 긴장 속으로 극의 분위기를 몰아간다. 문을 열고 나온 세자와 무영, 의금부 관헌들 앞에서 등장하는 안현 대감, 그의 표정이 비장하다.
왕명에 따라 세자를 포박하라는 내금위장, 여기에서 나서는 안현 대감. 내금위부 관헌들에게 호통을 치는 장면에서 이미 힘의 균형이 기울었음을 예측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미리 매복했던 수하들에게 공격을 명하는 안현과 갑자기 분산된 홍길동처럼 나타나는 이들의 출현은 서스펜스의 절정을 이룬다. 여기서 지난밤을 회상하는 장면은 새롭게 전개된 상황을 설명해주는 일종의 해설서라고 할 수 있다.
“저하의 일행 중에 조학주 사람, 있습니다. 그러니 저와 나눈 대화를 그 누구에게도 내색하시면 안 됩니다.”
드라마에서 자주 이런 장면이 포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가끔 극의 흐름상 절제된 장면을 보여줄 수 없을 때, 시청자의 이해를 위해 부득이하게 보여주는 경우도 가끔 있긴 하다. 모든 장면을 인과관계 속에서 구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영상미학으로 볼때, 배우를 통해 비밀을 발설하는 것보다는 시청자가 이를 포착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자연스럽다. 드라마에서 이런 숨은 그림 찾기는 극에 대한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경상 땅 봉쇄령으로 각지에서 성을 향해 모여든 백성들은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안절부절한다. 역병을 피해 올라온 피난민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수많은 백성들의 규모를 표현하기 위해 카메라 샷은 세자의 시점에서 길게 소실점을 완성한다. 양옆에 산등성이가 있고, 원근감을 더욱 확실하게 느끼게 하는 개울의 길이를 강조함으로써 엄청난 인파의 규모를 완벽히 재연해 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백성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순간적인 카메라 트릭을 활용한 절묘한 수 부풀리기의 전형이다.
상주 목사, 안현 대감, 세자의 설전에서 상주 목사는 결국 위기의 상황에 몰린다. 그의 말은 스스로를 옭아매는 동앗줄이다. 결국 상주 목사는 세자에 의해 파직을 당한다. 금새 힘의 균형이 세자에게로 옮겨간 것은 앞으로 이어질 극의 흐름이 바뀔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결국 백성들을 위해 성문은 열리고, 좀비들을 상대하기 위한 준비는 갖춰진다. 활을 매는 장인들, 병장기와 대나무 죽창을 나르는 사람들이 각기 다른 컷으로 카메라에 잡힌다. 여기에서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은 세자의 말이다.
"누가 작은 백성이고, 누가 큰 백성인가?"
이 말은 상주 목사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고 한 말에 대한 반박이다. 조학주나 상주 목사처럼 권력을 탐하는 이들은 종묘사직을 운운하며 힘없는 백성들을 종종 희생양으로 삼는다. 이번 회차에서도 그런 장면을 찾을 수 있다. 세자의 명으로 양반에게 대나무 낫을 쥐어주는 장면이 그렇다. 이 장면을 보면, 평소에는 죄다 권력을 누리면서도 막상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는 책 대신 무기를 잡을 수 없다고 나온다. 권력을 누리는 이들에 대한 속성을 신랄하게 파헤친 장면이다.
백성들이 병장기를 옮기고, 방어막을 구축하는 장면은 롱 샷과 중간 샷, 클로즈업 등을 통해 다각도로 그들의 움직임과 표정을 담아낸다. 이런 샷의 급격한 전환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들의 움직임을 더욱 실감 나게 표현해 내는데 일조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원거리 롱 샷으로 모든 채비를 마친 풍경을 보여준다. 이어 바로 대조적으로 한양의 궁이 정갈하게 정리된 모습으로 전경이 비친다. 순간적인 장면 전환으로 인해 상황의 대비를 절묘하게 포착해 낸 효과가 돋보인다.
궁중 복도를 걸어가는 중전.
“앞으로 사내아이 일 때만 내게 알려라.”
아이를 낳는 장면.
바로 옆 주변 공간에서 이를 안타까워 지켜보는 임신부들.
전 회차에서 등장했던 이들은 맛있게 고기를 뜯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었던 적이 있다. 그것이 이 장면으로 이어진 듯하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자마자 멎는 신.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임산부들. 하지만 현장의 실상은 피로 범벅이 된 참혹한 현장이다. 피를 닦는 신과 바로 오버랩되면 중전이 거처하는 방을 닦는 궁녀들의 모습이 보인다. 순간적으로 세숫대야의 물을 엎게 된 한 궁녀의 당황하는 모습이 불길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복선의 기법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신이다.
중전의 목욕을 도와주던 궁녀는 옷을 정리하다 실제로 임신을 하지 않고, 복대를 찬 중전의 배를 보게 된다. 바로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궁녀. 도도한 표정을 한 중전의 모습에서 의기양양함을 엿볼 수 있다. 시선을 깔고 내려보는 궁전의 표정에서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권력자의 시선이 느껴진다. 음악 또한 음산하고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이번 회차에서 상징적인 알레고리로 읽히는 부분은 서비와 동래부사가 약초를 캐기 위해 금단의 줄을 넘어, 깊은 산속 계곡으로 올라가는 장면이다. <킹덤>에서 애초 비극의 근원은 죽은 자를 살리는 생사초에 있었다. 이 장면은 다시금 그런 금기를 깬 자에게 닥칠 위기 상황이 곧 도래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들은 산속 입구에서 뿐만 아니라 계곡에 있는 금줄까지 제치고 약초를 캐기 위해 들어간다.
<킹덤>에서 동래부사 캐릭터는 크리스토퍼 보글러의 <신화, 영웅 그리고 시나리오 쓰기>에서 분류하는 ‘장난꾸러기’ 유형으로 볼 수 있다. 사실 <킹덤>과 같은 내용의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 이런 캐릭터마저 없었다면 극은 한층 그 무거움을 견뎌내기가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고로 이런 캐릭터의 배치는 음울한 극의 흐름을 잠시나마 희석시키는 요소로서 작용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이 풀이 죽은 사람을 살렸어요.”
동굴 모양의 계곡 입구에서 발견하게 된 풀린 여러 개의 족쇄와 사슬 등은 장차 다가올 위기가 멀지 않았음을 직관하게 한다. 이어 동굴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금줄을 떨어뜨린 누군가가 있었으니. 이어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 바로 이어지는 총소리와 화면 전환.
조총술을 알려주는 영신, 이 광경을 바라보는 안현 대감의 수하인 덕성은 그의 주군에게 착호군 출신, 수망촌의 아이라는 사실을 언급한다. 수망촌은 안현 대감 집에서 숙식하던 다음 날, 영신이 들리러 갔던 곳이다. 그가 복수의 칼날을 품게 했던 결정적인 이유가 숨어있는 장소이니만큼 극이 전개되면서 비밀은 풀리게 될 것이다.
임금을 가마에 태우고, 현장으로 온 조학주. 흔들리는 가마는 새로운 사건의 시작을 예고한다. 이렇게 스치듯 지나가는 장면에는 반드시 극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친다. 이런 장면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유추해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로 다가올 수 있다.
어두운 밤에 홀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말. 말의 주인공은 좀비에게 희생된 듯 말에서 피의 흔적이 발견된다. 좀비가 쳐들어올 길목에 불을 밝힌 횃불은 장렬히 타오른다. 밤을 새웠지만 좀비들의 공격은 시작되지 않았고, 세자 일행과 안현 대감, 동원된 백성들은 안심하며 경계태세를 푼다.
이어 클로즈업으로 잡히는 조학주의 얼굴이 드러난다.
“끝났다 생각하느냐.”
다들 정리하고 쉴 준비를 하지만 이때 하늘에 암운을 드리우니 새떼들의 부산한 움직임에 다들 긴장을 끈을 늦추지 못한다. 마치 이 장면은 영화감독 히치콕의 작품 <새>를 떠올리기에 한다. 드넓은 하늘을 가득 메운 새 떼의 향연은 불길한 징조가 곧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어 뿌연 안갯속을 뚫고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모여드는 좀비 떼. 하염없이 새 떼를 바라보는 세자 일행의 모습이 대조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