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의 백성들은 떠나는 배를 향해 소리쳐 보지만 잔물결만 남기고 사라져 가는 흔적만 겨우 지켜보게 될 뿐이다. 그때 세자와 무영이 나루에 도착해 떠나가는 배에 탄 이들에 대해 묻는다. 이에 한 백성이 대답한다.
‘병사들의 지휘관, 동네를 책임질 높은 분들, 모두 떠났습니다. 시신 처리도 제대로 하지 않고’.
결국 세자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들의 목숨만 살리려고, 백성들은 내버려 두고 떠난 것이다. 어둠이 오면 다시 살아날 좀비에 대비하기 위해 결국 나루터에 있던 이들은 지율헌으로 행선지를 정하고 출발한다. 지율헌으로 가는 길에 역병에 걸린 좀비들이 바위 아래 숨어 있는 광경이 한 아이의 눈에 포착된다. 결국 산속에도 즐비한 좀비들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된 세자는 이미 해가 넘어간 서녘 하늘을 바라보며 상황이 심각해짐을 깨닫는다. 그리고 곧바로 명령한다. 지율헌을 향해 뛰어가라고. 목숨을 건 질주는 이렇게 시작된다. 촌각을 다투는 시간 앞에 모두들 혼비백산하여 지율헌을 향해 달려간다. 그런 와중에 병자들을 태우고 가던 달구지가 산길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어둠이 엄습하여 좀비들은 다시 깨어나고, 사람들의 무리를 발견한 좀비들은 빠른 속도로 이들을 뒤쫓는다. 속속 지율헌에 도착하지만 세자 일행은 마차를 일으켜 세우느라 시간을 지체하게 된다. 급박한 상황에서도 세자는 병자들이 탄 마차를 포기하지 않고 혼신의 힘을 기울여 결국 여러 사람의 힘으로 다시 달구지는 출발하게 되지만 근접거리로 쫓아온 좀비들을 떼어내기 위한 사투는 계속된다. 가까스로 지율헌에 도착해 좀비들이 몰려오기 전 대문을 걸어 잠근 그들은 깊숙한 곳으로 몸을 숨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세자가 병자들이 탄 마차를 결코 포기하지 않고 목숨의 위험을 감수하고 구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세자의 영웅적 기질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추후 백성들에게 신임을 얻게 될 세자로서의 입지를 구축하기 위한 장치로서 기능한다. 극에서 복선은 전체적인 흐름을 이끌어가기 위해 장치로서 독자들로 하여금 그 당위성을 인식하게 함은 물론 장차 벌어질 일들에 대한 사건을 예견하는 방식으로도 활용된다.
<킹덤>에서 자주 등장하는 추격신은 서구의 좀비와는 다른 양상이다. 서구의 좀비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움직이는 반면 여기에서 등장하는 좀비는 마치 인간들처럼 엄청난 속도로 움직인다. 속도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좀비들의 행동 양태를 보면 다소 작위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인간에게 반응하는 좀비의 행태가 때론 너무 일사불란하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좀비들은 각기 다른 반응으로 각자 움직이는 속성이 있지만 극 중에서 그들이 함께 집단으로 움직일 때는 마치 집단지성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디테일은 극의 흐름을 용인하긴 할터이지만 좀비 본연의 무감각하고 - 특정 현상에만 반응하는 - 우둔한 캐릭터의 속성을 자칫 침해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한편, 자기들만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배를 떠난 무리들은 여유를 즐기며 음식을 먹기도 하지만...... 다시금 배 속에 숨어있던 좀비의 습격으로 인해 집단 몰살을 하게 된다. 이 장면은 극에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는데 배반을 행한 이들에 대한 당연한 결과라 그런지 급하게 극이 진행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좀비들과의 대치 상황도 큰 이벤트 없이 끝난다. 서비가 나루터에서 지율헌이 워낙 방비가 잘되어 있어 좀비들 또한 쉽게 침범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런 말의 얼개를 충족시키기 위한 조치인 것 같기도 하다. 결국 드라마 속의 대사와 행동은 긴밀하게 이어지고 호응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율헌에서 대치하던 이들은 밤을 새우고, 아침 해가 뜨자 비로소 안심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여유도 잠시, 내금위 병사들의 등장으로 지율헌은 일대 혼란에 빠져들게 된다. 결국 쫓고 쫓기는 대결과 상대방을 기만하는 전술로 내금위 병사들을 몰아낸다. 여기서 내금위 병사들을 따돌리는 역할은 지율헌에서 서비와 함께 살아남은 영신이 담당한다. 그의 과거는 극에서 드러나지 않으나 여하튼 무예에 출중한 인물로 조총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솜씨로 인해 세자 일행에게 닥친 위기를 모면해 주는 역할을 한다. 영신의 활약은 마치 영화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을 따돌리던 역할을 맡았던 이장하 역의 류준열을 떠올리게 한다. 극에서 뛰어난 사수로 설정된 그는 워낙 사격 솜씨가 출중해 무영으로부터 존재에 대한 의심을 받기도 할 정도이지만 오히려 그런 설정이 금위군을 따돌리는데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당위성을 심어주기도 한다.
드라마의 속성은 지속적으로 벌어지는 사건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당위성을 확보하느냐 하는 문제에 달렸다. 사건에 대한 개연성의 얼개를 얼마나 촘촘히 짜느냐에 따라 극의 흐름이 자연스러워질 것인지, 아니면 다소 작위적 일지 결정된다. 처음으로 드라마를 봤을 때는 그런 장치가 보이지 않지만 두서너 번 작품을 반복해서 보게 되면 작가가 촘촘하게 숨겨놓은 그물망에 하나둘 걸려들고, 그런 요소들이 극을 이루어 가는 퍼즐임을 알게 된다. 드라마에서 쓸데없는 장면은 결코 나오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극의 진행이나 사건에 대한 암시, 개연성을 확증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몰고 간다. 결국 이런 극에 대한 해석은 촘촘한 장치에 대해 얼마나 디테일을 추구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한편, 흉흉한 소문을 듣고 강녕전의 임금을 꼭 보겠노라고 찾아온 몇 명의 대신들은 조학주를 위기에 빠트리려 하지만 역으로 조학주의 인도로 왕의 실체를 보게 되고, 결국 그들은 엄연히 살아있는 임금에 대해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역모죄로 붙잡혀 가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 장면의 전개과정 또한 관객들의 예상을 뒤엎고, 왕의 실체를 보여주는 방식은 낯선 긴장감을 조성하게 한다.
☞ 5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