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발센
몰래 문틈으로 파티에 참석한 아이들의 말을 엿들을 수 밖에 없었던 소년. 그들은 하나같이 자기 부모님의 출신에 대한 자랑을 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소년은 그 자리에 참석하는 것만으로 영광일 수 밖에 없었던 평민 출신이었다. 훗날 그는 <그리스도와 12사도>를 남긴 유명한 예술가가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식의 교훈이 현실적으로는 얼마 만큼의 가능성을 담보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소위 SKY대 진학자 중 상당수가 고소득자의 자녀들이라는 사실은 이미 고렷적이야기 되어버린지 오래다. 학연, 혈연, 지연 중심의 문화가 출세의 가도를 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런 통계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일화의 교훈은 출신에 상관없이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그릇된 환상을 심어준다. 이는 아마도 토르발센이 19세기 인물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때에도 물론 부에 의한 영향은 컸겠지만 요즘처럼 양극화가 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속담이 무색해지는 이 시대에 이런 명인들의 일화는 그저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뿐이다.
출신 성분에 상관없이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하는 사회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처럼 그야말로 이상향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자본주의를 뛰어넘을 수 있는 이상적인 사회체제가 새로 탄생하지 않는 이상, 국가가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고른 분배정책에 힘을 기울이는 것이 그나마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토르발센처럼 성공한 사람의 사례를 들어 분발을 촉구하기 이전에 적어도 출발점은 똑같아야 할 것이다. 같은 대학생이라 하더라도 어학연수를 떠나는 학생과 그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할 수 밖에 없는 학생의 미래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