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화원 (16회)

얼굴 없는 초상

by 정작가


이번 회차에서는 신윤복이 여성으로서 정체성을 드러내는 과정이 주를 이룬다. 이는 김홍도와 정향에게는 엇갈린 향방으로 그 운명의 궤적이 달라짐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극 초반 신윤복이 다시금 김홍도의 손이 부상에 처할 위기에 이르자 초상화 더미를 별제 장벽수에게 내어주는 장면은 지엄한 어명보다 김홍도에게 마음이 기울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공교롭게도 이때의 신윤복은 기생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이런 상황 속에서 김홍도는 신윤복이 더 이상 남성이 아님을 직관했을 것이다. 그가 자연스럽게 웅크리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신윤복에게 자신의 옷을 입혀주는 대목은 동성으로서의 제자 사랑과는 거리가 먼 장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신윤복 또한 화답하듯 자기가 입고 있던 김홍도의 옷을 다시 되돌려 입혀주는 과정에서 자신이 여성임을 밝히는 것은 더 이상 그들 사이에 비밀이 무의미함을 느끼게 해 준다.


김홍도가 신윤복에 이마에 짧은 입맞춤을 하는 것은 그들이 더 이상 스승과 제자 사이가 아닌 연인으로 발전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도화서 친구인 이인문의 여동생 이정숙의 호의를 거절하고, 그에게 혼처 운운하는 것 또한 신윤복에게 이미 마음이 굳혔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런 한편 야밤에 신윤복과 만남을 준비하는 정향은 그와의 만남을 통해 더 이상 정인으로서 그 관계가 파탄이 났음에 절망한다. 이로써 신윤복은 김홍도와의 관계를 공고히 하고, 정향과의 인연을 정리하게 된다. 이 장면은 신윤복이 그린 <월하정인>이란 작품을 염두에 두고 연출된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야심한 시각에 만나는 두 남녀의 풍경을 재연한 이 장면에서는 등을 들고 가는 갓을 쓴 남정네와 쓰개치마를 쓴 여성이 신윤복과 정향으로 바뀐 것임을 짐작케 한다. 다만 체형에서 남자의 체구로서는 왜소해 보이는 신윤복과 정향의 대비가 다소 부자연스러운 것은 작품 속의 이미지를 온전히 재현할 수 없는 극의 작위성에 근거한 것이기에 이를 감안하고 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극 중간에 두 화공이 정조가 명령한 사도세자의 어진을 완성하기 위해 기억을 더듬어 이를 완성하는 장면은 김홍도와 신윤복의 관계 또한 온전히 완성되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준다. 또한 신윤복이 김조년에게 소속된 화가로서 호조판서와의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데 뜸을 들이는 장면은 그와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암시하기도 한다.


<바람의 화원>에서 매회 차마다 기대되는 장면은 조선 시대 거장인 두 화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다. <얼굴 없는 초상> 편에서도 신윤복의 작품은 빛을 발한다. 극 중에서 기생 정향을 모델로 그린 작품은 <전모>로 현대어로는 ‘빨간 모자를 쓴 여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극 중에서는 신윤복이 정향을 처음 본 장면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정향을 모델로 하여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극 중 김조년과 대화를 나누는 한 벼슬아치의 입을 통해 그대로 묘사된다.


‘이 전모 쓴 기생년이 치마까지 거들어 먹고 어딜 이리 바쁘게 가나’.


이런 대화 속에서 당시 지배계급이었던 양반이 기생을 대하는 면모를 엿볼 수도 있다. 극의 말미에 신윤복이 여흥을 하는 양반들의 일상을 그리는 장면은 당시에 예술인의 위치를 가늠하는 척도로도 손색이 없다. 당시 종합예술이었던 기생과 화원은 이토록 양반 계급의 보좌하는 위치에서 복무했으나 김조년처럼 상단의 우두머리로서 비록 중인 계급이었지만 이런 계급을 뛰어넘는 수완을 발휘하여 독자적인 위치를 구축했던 현실을 보면, 당시에도 여전히 돈의 힘이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얼굴 없는 초상> 편에 등장하는 서징이 그린 ‘얼굴 없는 초상’은 김홍도의 스승과 친구였던 서징 죽음의 미스터리를 파헤쳐가는 단초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정조 또한 이 초상의 얼굴을 밝혀내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임을 두 화공들에게 주지 시킨다. <바람의 화원>이 멜로드라마 성격을 띠면서도 흥미로운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이런 미스터리한 요소를 통해 지속적으로 정조와 정순왕후의 대비된 갈등이 극의 중심 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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