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화원 (17회)

십 년 전 여인

by 정작가


이번 회차는 과거의 미스터리 속 비밀을 파헤치는 방향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신윤복의 유년 시절, 비극적인 부모 살해 모티프가 친구인 김홍도의 기억을 토대로 재현된다. 김홍도가 그토록 찾아다녔던 여인이 신윤복이었다는 사실은 <바람의 화원>이 종반전으로 치닫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전회차에서 이미 ‘얼굴 없는 초상화’는 미스터리한 과거 비밀을 밝혀 줄 단서로서 이번 <십 년 전 여인>편에서는 극의 흐름을 주도하는 매개체로 활용된다. 종이 공장에서 드러난 얼굴 없는 초상은 그것이 비밀을 감추기 위한 과정이었음이 밝혀진다. 한 겹 덧댄 얼굴 없는 종이가 벗겨지고, 새로운 인물의 얼굴의 드러나는 순간 신윤복의 기억은 과거의 부모가 살해되었던 시점으로 향한다.


“이 자일 것이다. 내 스승과 벗을 죽인 자가.”


순간 신윤복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혼절한다.


<십 년 전 여인> 편에서는 과거 신윤복의 부모가 괴한들에게 습격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장면이 생생히 펼쳐진다. 검은 복면을 한 일군의 무리들이 집을 에워싸는 장면에서 우두머리 자객의 눈초리는 부각하여 비친다. 얼굴 없는 초상화의 실물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들은 곧 서징이 있는 방 안으로 들이닥치고, 서징은 밖으로 끌려 나와 목에 칼이 겨눠진 채 눈앞에서 자신의 그림이 불태워지는 광경을 목도한다. 부엌에서 신윤복을 숨겨주던 그의 모친은 다른 자객에 의해 발각되어 끌려나가고, 윤복은 숨은 곳에서 직접 부모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가 바라보았던 자객의 눈초리는 클로우즈 업되어 드러나고, 이는 신윤복의 현실 속 꿈에서 깨어나는 장면과 이어진다.


극에서 회상 장면은 약간은 탈색된 색조로 표현된다. 흑백으로 표현한 희미한 기억보다 생생한 톤의 과거 기억을 상징하는 이런 색의 표현은 보다 현실감 있는 과거를 보여주기 위한 연출자의 의지로 볼 수 있다. 신윤복이 친 고택을 찾아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은 유년 시절의 자아를 대면하는 장면에서 더욱 애절한 정서를 부채질한다.


고택을 찾은 김홍도.


“너였느냐?”

“무슨 말씀을 하시는건지.”

“일월당의 여식이 너였느냐?”


드라마 속에서 그동안 감춰왔던 신윤복의 신분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김홍도와 신윤복의 포옹신은 복합적인 감정의 발로로 다가온다. 스승과 제자로서, 연인으로서, 친구의 여식으로서. 그가 신윤복의 갓을 벗겨내고 포옹하는 장면은 이런 복합적인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해후의 장면으로서 한 서린 세월의 아픔을 눈물로 희석하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사족을 달자면, 갓을 벗겨내는 장면은 김홍도와 신윤복의 포옹신을 극적으로 연출하기 위한 사전장치로 보인다.


“스승님. 10년 동안 찾아 헤맨 여인이 저였습니까?”

“미안하다. 미안하다. 내가 미안하다.”


이제 시청자는 더 이상 신윤복이 정체가 드러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된다. 이렇듯 의문의 해소는 질기게 이어진 미스터리의 속성에서 벗어나 극이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고 있음을 드러내 준다.


김홍도는 신윤복의 그림 속에서 이전부터 이성성을 감지해 왔다. 그가 이성임을 확증할 수 없음에도 이성처럼 대할 수 있었던 데도 화가로서의 촉이 자리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할 듯하다. 드라마는 영상을 통해 상황이 전개되지만 종종 배우의 입을 통해서도 사실이 드러나곤 한다. 김홍도가 고택에서 해후 후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배우의 진술과 영상이 혼재된 기법을 통해 신윤복이 이성으로 드러나는 과정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십 년 전 여인> 편에서는 부모살해 모티프 외에도 변장 모티프의 실체를 파헤친다. 이번 회차가 과거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 주요한 과정이었기에 아예 버려졌던 어린 시절의 신윤복이 어떻게 해서 남자로 다시 태어나고 길러졌는지, 김홍도와 신한평의 대화를 통해 드러난다. <바람의 화원>에서 변장 모티프는 위장이 아닌 존재 방식으로 기능한다. 작가가 역사적인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데도 신윤복을 여성으로 설정한 것은 극적인 요소를 부각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테고, 당대 대표 화가인 두 인물의 그림스타일에서 남성의 호방함과 여성의 섬세함이라는 다소 이질적인 필치의 발현을 특징 삼아 이를 작가의 상상력으로 풀어내려는 시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이번 회차에서도 여전히 거장의 그림은 빛을 발한다. 신윤복이 그린 <유곽쟁웅>과 <월하정인>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유곽쟁웅>은 정향을 중간에 두고, 마치 김조년과 신윤복의 대결을 염두에 둔 듯하다. <월하정인>은 이전 회차에서 신윤복이 정향에게 커밍아웃을 한 시점에 연출된 상황을 염두에 두고 등장한 그림이다. 이런 그림 속에서 이야기를 유추해 내고, 이를 발견하는 기쁨은 이전의 호사가들에게도 향유했던 즐거움인 듯하다. 극 속에서 이런 과정 속에서 그림 경매가 등장하는 대목은 이를 반영한다.


<십 년 전 여인>편에서는 마치 <바람의 화원>에서 미스터리한 것들을 모두 해결하는 장으로 마련한 듯한 느낌을 준다.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림 속에서 '조년지살', 즉 조년의 의한 죽음이라는 의미를 해독하는 장면을 보면 더욱 그렇다. 신윤복의 성적인 정체성과 유년 시절의 비밀, 직접 부모를 해한 자객, 이를 명한 인물까지 모두 드러나니 말이다. 고로 이번 회차는 '미스터리의 비밀 풀기'라는 부제를 지어도 좋을 듯하다.


이전 16화바람의 화원 (16회)